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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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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리 안아파....엉..엉


BY 나의복숭 2003-07-16

해가 질무렵 어스름한 노을이 하늘에 깔려 있었다.
흠~ 하늘 쳐다본지도 한참 되었구만...
뭐가 바쁜지 맨날 후닥닥거리며 쫓아다니다보니
어디 한가하게 하늘쳐다볼 틈이라도 있었으랴.
아랫집에서 맛난 반찬을 하는지 베란다위쪽으로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난간에 턱을 괴고 한가하게 하늘 쳐다보면서 있으니
내 팔짜 상팔짜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꼴에 뭔 상팔짜?
진짜로 상팔짜인 사람이 들으면 픽~ 웃겠지만
그래도 백치처럼 그런 생각이드니 별일이다.

검은색 티셔스를 입은 아들넘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인제 엘리베이트를 타면 1분쯤후면 집에 들어오겠구나.
현관문 안쪽으로 숨어있다가
왁~ 해버릴까?
그럼 저넘이 놀랠까? 안놀랠까?
아녀.
오마니 권위를 세우면서 들어오면 젊잖게
''왔냐?''
하는게 더 낫겠지.
혼자 낄낄거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거실바닥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참 시간이 됐는데도
이넘이 올라오는 기척이 없다.
아니... 엘리베이트가 고장이 났나?
슬며시 걱정아닌 걱정이 되어 현관문을 열고
빠꼼히 내다 보는데도 전혀 기척이 없다.
스리퍼 끌고 엘리베이트쪽으로 가봤는데
왔다 갔다 잘만 가동되고 있다.
뭔일이람?
다 큰넘 유괴될일은 없을꺼고
유괘된다해도 범인한테 갖다받칠 돈도 없는데...ㅋㅋㅋ

집으로 들어와서 다시 베란다를 내려다 봤다.
당연하게 없다.
내가 잘못본건가? 아닌데....
갸우뚱 갸우뚱을 열두번도 더 하고 있는 찰라
현관문이 열리고 아들넘이 헉헉 거리며 들어온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채
''왔냐"
점잖게 말했지.
"네"
책가방인지 고생 보따린지 휘뜩 벗어재끼곤
방으로 들어가는데 늦게 들어온데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으니 궁금시러버서 죽을맛이다.
''아까 입구로 들어선거 봤는데 왜 인제 들어와?''
성질 급한넘이 할수있나....먼저 물을밖에...
''바로 왔는데요?"
뭔 소리냐는 듯 눈이 사탕만큼 동그랗다.
지가 사탕만하면 난도 그만큼 못할까봐.
지보다 눈을 더 크게 뜨고서
"바로 왔담서 왜 그리 오래 걸려? 엘리베이트에 없뜬데?"
엘리베이트에 나간거까지 실토하고 말았다.

"아하.... 저 걸어서 올라 왔거든요"
"뭐 14층을 걸어서 올라와? 왜?"
싱거운 넘 봤네. 힘이 남아도나.
그냥 운동삼아 걸어왔단다.
"여태 걸어올라왔는데 모르셨어요?"
내가 알턱이 있나?
가만히 생각하니 내 보다 엄청 더 많이 먹는 저넘이
배에 삼겹살 오겹살이 안찌는 비결이
14층을 걸어올라온거 아닐까?
돈 안들고 운동하고 살 안찌고...그거 괜찮네.
그래 좋았쓰. 나도 함 해봐야지....니가 하믄 나도 한다.
"내 지금 내려갔다가 너처럼 계단으로 올라올꺼야"
"왜요? 어머니 연세에 좀 힘들어요. 하지 마세요"
"뭐 연세라니? 너 이 옴마를 푹삭 삭은 늙은이 취급하구나.
내가 오늘 두 번 못올라오면 너한테 만원 즐껴"
아이구 울려고 내가 요런 약속을 했든가?


전에 엘리베이트 고장났을 때 헥헥 거리고 올라왔든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손에는 노점 트럭에서 한보따리 3000원에 산 참외를 들고서....
''새키가 말이야 기분나쁘게 오마니를 늙다리 취급해?
너 두고봐. 이 오마니의 저력을 보여줄꺼다"
혼자 궁시렁 궁시렁~
괜히 내 바람에 씩씩거리며 계단을 마구 올랐다.
5층까지는 거짓말 쪼매 보태서 숨도 안쉬고 올라갔지.
뭐 올라 갈만 하구먼.
6층 이구~
7층 허걱~ 장난이 아니구만.
10층 아이구야. 뭐하러 약속은 해가지고설랑...
14층까지 죽어라 올라왔다.
기운 다 빠졌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도 이빨 팍 깨물었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도맷금으로 내 아들 같은넘한테
늙은이 취급 안받게 할려는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서...히힛

결국
14층을 두번 왔다갔다 했다
울 아들넘 어처구니 없어 했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당연 돈 만원 낭비 안했지비.
그나 저나 다리가 슬슬 저려 오는데 아프다하믄
저넘이 또 그러겠지
''거 보세요. 나이는 못속인다니까요"
에라이 이넘아.
다리 안아파. 절데로 안아파.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