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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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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집에서 뭐 했어? ''


BY 올리브 2003-09-24

낮근무 인계시간을 앞두고 응급실에서 소아과 환자를 올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과 일반병동의 차이는 인계시간에 대한 흐름이 다르다는건데

어쩌쩡한 이 시점에 환자를 올린다는것 만으로 내 맘은 급했다..

 

인계를 시작할즈음 5세된 여자아이가 올라왔다..

화상환자 였는데 일단 응급실에서 간단한 검사와 드레싱을 끝내고 우리에게

인계되었다..

 

아침근무 책임 간호사가 인계를 시작할때 난 신환에 필요한 간호력과

이름표를 챙기고 병동 orientation을 안내하기 위해 병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환자 history를 마치고 기록까지 되어 있었지만 내가 해야

할일은 남아 있었으니깐..

 

'' 어쩌다 화상을 입은거예요? ''

 

불안한 표정으로 일그러진 아이 엄마의 심사를 살피며 물었다..

소아과 에서는 아이 엄마의 맘을 잘 헤야려야 센스있는 간호사란걸

아시려나..

 

'' 옆집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커피 마시고 있었는데 아이가 커피잔을

   엎어버렸어요.. ''

 

'' 많이 아팠겠다.. 우선 ....  ''

 

입원하고 나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일러주고 많이 걱정하지 말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말까지 덧붙이고 서둘러 나왔다.. 챠트정리가

남아있었고 인계시간까지 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맘이

급했었으니깐..

 

인계는 막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 그때 저만치 씩씩대며 걸어들어오는 얼굴 벌개진 남자가

눈에 띄었고 방금 입원한 아이 이름을 대면서 몹시도 화난 얼굴로

병실문을 열어 젖혔다.. 그곳은 6인실 이었고 다른 환아 엄마들이

함께 있었다..

 

'' 야.. 너. 집에서 뭐 했어? 뭐 했냐구.. 애가 이지경이 될때까지 넌

   뭐했냐구..... ''

 

간호사들끼리 회진을 돌려다 모두 그곳 병실문을 열었다..

 

소아과 근무를 하면서 느낀건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들 감정까지

control 해야하는 이중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걸 그때 또

알았다..

 

그 남자 보호자는 낮부터 술을 상당히 마셨었고 입안에서 냄새가

요란했다..

 

병실문을 열었을때 우리 간호사들은 당황했었다..

아이 엄마는 무릎 꿇고 두손 모아 빌고 있었고 그 앞에서 남잔 말도

안되는 억지로 아이 엄마를 몰아 붙이고 있었다..

 

'' 보호자분. 병실안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말씀하시면 아이들이 놀래서

   울어요.. 벌써 저기 아이는 놀래서 울잖아요.. ''

 

책임 간호사가 목소리를 낮추어 한마디 할때도 벌개진 눈동자를 우리에게

고정시키고 쳐다보는데 낼 또 병원에서 이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보던 다른 아이 엄마들은 아이들을 잠시 복도로 피신 시켰고

상황이 빨리 종료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남자 보호자는

병실문을 꽝하고 맘껏 발길질을 해대더니 나가버렸고 그제서야

아이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간호사님들 미안하고 죄송해요..

   술만 먹으면 저래요.. 이따 사과하러 다시 올꺼예요.. ''

 

그때 난 결혼전 이었고 그렇게 요란한 남자의 당당함에 기가 찼었다..

근데 지금 결혼하고 살면서 어쩌다 보게되는 남자의 억지스런 당당함은

그때와 별 다르지 않다는걸 알았다.

 

아일 키우고 병원일을 계속하고 있는 요즘 남자의 이기적인 발상이

가끔씩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의 억지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여자들은 집에서 뭘하고 있었어야 했나..

 

답도 없는 물음에 가슴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