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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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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여기 여기다 .. ''


BY 올리브 2003-08-18

밤근무 간호사가 아침보고를 시작하기전 잔뜩 부은 얼굴로 우릴 맞이했다.

 

'' 어제 힘들었어요? 신환이 있었나? ''

 

난 예민해진 밤근무 간호사 눈치를 보며 보고장을 뒤적이고 있었다.

 

'' 그게 아니라 .. 다들 회식이라고  call 이 안되는 거예요.. 수술한 산모가

   아프다고 하는데 당직도 연락이 안되고 기 막혀 죽겠어.. ''

 

아.. 그러고 보니 어젠 금요일 이었고 병원에서의 회식은 대부분 금요일에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래도 당직은 남아서 환자들 뒤치닥거리 하고 그랬는데

어젠 전체회식 이었고 연말이라서 그 어쩔수 없는 분위기를  밤근무 간호사들이

감당하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투덜대며 보고가 끝나고 아침 회진이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근무 간호사들끼리 각자 보고 받았던 환자들을 확인차 병실을 순회할때

저만치 비틀대며 걸어오는 유난히도 키가 작았던 레지던트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 아.. 죽겠다.. 뭐 마실거 있어요? 아직 과장님 안 오셨죠? ''

 

'' 어.. 저기 막 오시네요.. ''

 

그 뒤로 천천히 회진준비차 걸어 들어오는 과장님을 보고 내가 서둘러 챠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수선생님이 다른과 회진에 같이 동행하게 되어 내가 대신 그 선생님 환자들을

안내하게 되었는데 같이 걸어들어 가던 작은 키의 선생님이 또 한번 고개를

흔들대며 비틀거렸다.. 뭔가 어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거라는 상상이 날

당혹스럽게 했고 복도를 걸어가던 선생님은 어제밤 회식때 몽땅 먹어뒀던

내용물을 거침없이 쏟아져 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난 맘이 급했다..

 

'' 선생님.. 여기 여기다.. 이곳에다 그냥 .. ''

 

난 서둘러 처치실로 안내했고 처치실 한쪽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근데 이번엔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것 같더니 그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주저앉아만 있는거였다..

키작은 선생님 대신 수선생님이 환자파악을 위한 점검에 들어갔고 겨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종결되고 있었다..

 

외래로 내려 가시려다 뒤를 돌아다보며 과장님 하시는 말씀은

 

'' 이거 간호사들 보기 미안하네.. 어제 뭐 했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키가 작아서...  저기 소아과 방이 하나 비어있던데 거기다 뉘여놓고 주사좀

   부탁해요.. 잘 먹지도 못하면서 키만 작으면 다냐구... ''

 

옆에 있던 인턴 선생님이 키작은 선생님 부축해서 병실로 옮기긴 했는데

난 참으려고 했던 웃음이 그제서야 막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키 작은 선생님 이라고 우리끼리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땐 부르긴 했어도 정말

그렇게 키가 작은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맞춤 침대처럼 편안하게 딱 들어맞는 그 모양새땜에 그날의 회진은 어쩔수

없이 무사히 넘어갔지만 수액을 보충하느라 주사바늘을 꽂아대는 나한테

희미하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

 

'' 나..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키가 작으니깐 이렇게 이런데 독방에도 누워

   있어보고 기분 괜찮네요.. 고마워요.. ''

 

아마도 ..

어쩌면 ..

 

병원에서의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일수만은 없는 상황이 많은지라

불편할수도 있고 어려울수도 있는게 의사와 간호사이긴 했지만 그날 그렇게

키작은 선생님한테 수액을 달아주면서 내가 본건 그래도 우리에겐 해야 할일이

많다는 거였다.. 일하다가 서먹하게 오해가 있을수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상황

앞에선 책임을 떨쳐내느라 방어적이 될수도 있었고 그러다 서로의 업무가 주는

차이땜에 상처를 받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의료인 이라는 직함에는 변한게

없었다..

 

담 날 집에도 가지 못하고 우리 간호사 스테이션에 찾아온 키 작은 선생님은

멎적게 웃으면서 이쁜 한다발 꽃을 내려놓고 돌아서셨는데 그때 그 선생님 키는

드라마에서나 볼수 있었던 멋진 남자처럼 늘씬하고 매력적인 모습이셨다..

 

그리고 ..

다시 오후 회진준비를 서두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