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580

아버지와 딸


BY 도영 2004-11-22

자정이 다된 시각에 걸려 오는 전화는 두가지 케이스다
첫째는 시댁이나 친정에 탈이 있다거나 아니면
술취한 이들에.. 번호는 맞는데 앞자리와 뒷자리가 뒤바뀐 잘못 걸려 오는 전화 라는걸 ..

자정이 다된 시각에 전화벨 소리가 불끄고 막 자려는 거실에 고요함을 뒤흔들었다
둘째 아들이 받음과 동시에 정색을 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더만
에미인 나를 바꿔 주면서 누군줄 맞추어 보란다.
아들의 표정을 보니 일단은 나쁜 일은 아닌것 같고 동그레진 내눈을 보더니
둘째 아들이 전화기를 손으로 막고 낮은 목소리로""외 할아버지..외할아버지....""한다.
친정 아버지라....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아버지가 늦은 시간에
전화을 건것도 놀랄 일이지만.나 결혼 하고 22년동안 아버지의 이번 전화는 아마도  서너번째의 전화 여서 난 정색을 하며 받아야 했다
"""어..아버지...무슨일인교??"""
""내가 말여....감포 갈일이 있어 니그집에서 하루 자야것다..""
자그나마 수년만에 전화를 하셨으면
""야야...그래 이서방과 아이들은 잘있나?넌 건강 하냐?""
뭐.이렇게 물어보셔야 친정 아버지 답건만
그런 당연한 안부는 이번에도 거두절미 하시고
연일 정씨 일가가 모여 사는 감포에 벌초겸 문중 회의차 오신다는 통보 였는데 일부러 딸네집 오시는게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 오시는 거였다
아버지의 딸네집 방문은 세번째 방문 이셨다
첫번째 방문은 나 새댁 시절 너무도 고된 시집살이에
내가 한계를 느끼고 탈출 하려 했던 위험 수위때  나를 위해 딱 한번 엄마 하고 오셨더랬다
그당시 아버지는 주사 심한 내  시아버님께..
""내 여식이 모자르니 사돈께서 그러시는것 아닙니까..다시 데려가 일년정도 교육 더 시켜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한마디 말씀에 조선 천지 똥구멍 아래 없을 거라던 밸나다고 소문난
서슬 시퍼렇던 시부모님은
"'아고 사돈요 쟈 더 가르킬거 전혀 없니더..내 주사가 문제지요 문제..'"
그렇게 딸을 위해 딱 한번 포항 오셔서 시 아버님의 항복을 받아내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시고 ..
나머지 두번의 기억은 문중 회의차 오셔서 하룻밤 억지로 주무시고 가신것이 전부 였다.
시집오고 22년 동안 세번의 딸네집 방문의 서운함도 서운 함이지만
아버지는 나 어릴적 아들딸 차별이 정도가 지나쳐  어린 나는 종종 상처를 받고는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가 커가면서 아버지를 더  이해할수가 없었다보니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딸이되었다

둘째 딸인 나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잦었는데 그러다 엄마가 5년전 돌아가신 계기가 아버지 때문 이라는 오해로 아버지란 존재를 거의 잊고 살다시피 했다 그런 아버지가 딸네집에 오신다는 전화을 끊고는 수화기를 든채 그동안 미워 했던 아버지의 전화에 무덤덤하게 받았지만 이상하게 반가움이 밀려와 나의 묘한 감정선 에 잠시 헷갈렸었다

어제만 해도 아버지의 세번째 방문에 애써 덤덤 한척 한 나는

막상 오신다는 전날이 되니 내심 신경이 쓰이기 시작 했다
오신다는 날짜에 정확한 포항 도착시간을 알고 싶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허!!그거 알아 모해!!걱정도 팔자다.내가 어련히 포항 도착함 전화 안할까봐..흥!!""
아버지는 늘 이랬다
정확성이 없고 심이 흐린 아버지는 고인이 되신 엄마의 헛빼통을 디집어 놓으신곤 했는데  정확한 기차 시간을 알려는 내게 아버지는 면박과 함께 내 비위를 울렁거리게 하고 전화를 끊으시는게 아닌가.
그런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골치가 찌근 찌근 아파 왔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에는 남편도 숙직이고 애들도 밤늦게 오는데
부녀지간의 어색함을 극복할 자신 없던 나는 인천 사는 언니에게 지원 요청을 해야만 했다
"'언니야.아버지 내일 오신다는데 나 아버지랑 한바탕 부디칠것 같다 오늘도 기차시간 때문에 부딪치기 직전까지 같다 조짐이 안좋다 .단둘이 거실서 앉아 있을 생각 하니 아찔하니 언니야가 좀 온나..""
아버지와 나의 만남은 살 어름을 걷듯 늘 위태로웠기에
나의 지원요첨에   형부를  대동 하고 가겠다는 언니의 답을  받고 휘파람을 휘휘 불었다.
나는 아버지의 주위에 서성이는 여자들때문에 어머니속을 태우던 아버지를 싫어했고
아들과 딸을 차별 하시는것도 부족해 친손주 외손주 를 차별 하시는 대물림 하는 처사에 치를 떨었다 

내나이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기면서 갈수록 아버지를 향한 원망은 절정에 달하다보니 아버지와 이번 만남은 3년만이였다
아버지가 절대로 가르쳐 주지않는 포항 도착 시간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며
철도청에 체크하고  이튼날 한치에 오차도 없이 터미날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아버지를 찾아냈다

그러나 하필이면  아버지의 골패인 목덜미가 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가슴이 쨘 해지면서 싸해져오는게 아닌가.

 여름 햇살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아버지의 목주름과
아버지의 덜 다려진 꾸깃꾸깃 아버지의 와이셔츠에서
5년째 홀로 사시는 독거 노인에 초라함이 너무도 선명해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침을 꿀떡 삼켜야만 했다
당신이 가르쳐 주지도 않은 도착 시간을 30초 차로 부르는 딸을 보자
아버지는 놀라는 표정과 반가움이 역력 하셨다

이렇게 어색한 부녀지간의 상봉이 이루워 졌고
김밥 한줄로 허기를 달래시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70대 노인은
잠시 쉬어 가자며 인도블록 에 쪼그리고 묵묵부답 담배을 뻐끔뻐끔 태우고
나는 어색함에 못견뎌 괜히 차 열쇠에 달린 초록색 개구리 인형만 조물조물 거려야 했다.
침묵을 깨긴 깨야 하는데 이분위를 얼릉 모면 하거나 쇄신 해야 하는데 머리를 쓰다  나는 다짜고짜.
.""아버지..백화점 가시더..그 옷차림으로 내일 감포 문중 회의에 어예 가심니꺼..바로 백화점 가시더..'""
딸인 나의 말에 아버지는 전형적인 강원도 말투로
""허!!이나이에 금으로 치장 한다고 때깔이 나냐??금땡이로 둘둘 말아도 폼안나..씰데 없는 짓말고 바로 니그집으로 가자!!다 늙어서 옷은 무신 옷..돈도 썩었네..흥!!""

거절도 어쩜 이리 기분 상하게 하실까 역시 아버지 다운 거절 방법 이셨다
""아버지 ...내일 저하고 감포 문중회의 가실거죠?아버지를 생각해서가 아니고 내 체면 생각해서 옷 사드리려 하는거니 백화점 가시더 딸 욕멕일 일 있어요..""
나역시도 끝까지 아버지를 배려함이 아니라고 내 체면 때문이라고
파동 없는 착 깔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강조를 강조를 하는 나역시도
아버지와 쌍벽을 이루는 발효가 덜된 인간 중에 하나 였다
이럴때는 아버지식대로 불도저 식으로 밀어 부치는 노하우를 터득한 나는 백화점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차를 파킹 하자
그제서야 백화점임을 눈치챈 아버지는 조금전에 면박을 포기하시고 순순히 따라 오셨다.
나는 딸에 필요함도 딸에 소중함도 상기 시키려고
아버지가 입고 오신 초라하고 낡은 옷들을 벗겨 내고
회색 남방에 옅은 갈색 바지단을 가브라로 멋을 내어 삐까 번쩍하게 입혀서
거울앞에 세워 놓으니. 아버지는
""험....메이커 옷이 좋긴 좋쿠만..쫌 낫다야...낫네 나...험험..""
당신의 감정을 들킨것이 무안 하셨는지 백화점 카드로 계산 하는 딸에게
""카드가 말여.카드가 큰 문제여!!이 카드때문에 망한집이 한둘 아녀..!'"

한마디 하시는 아버지의 허풍스런 제스처에   당당하시던 아버지의 예전 모습이  순간적으로 그리워진것은 왜였을까.
내 아버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스텐 기둥에 비쳐 지는 당신의 변신한 모습을
딸이 볼새라 힐끔힐끔 훔쳐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조금전 터미날에서
"" 늙은이가 금을 칠칠 감아봐라 빛이나나 '"하시던 아버지는 찾아볼수가 없엇다
의외로 부녀지간은 위태위태한 평소에 분위기와 달리
화평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서울 사는 여동생이
엽기 부녀의 만남을 궁금해 한 나머지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은 유난히 부디침이 많은 부녀지간의 상봉을 걱정반 궁금증 반 재미반 물어 본다. 우물쭈물 하는 내게 아버지가 옆에 계셔 말하기 곤란 할거라며
동생의 장난기 있는  질문에  까르르 넘어 가니  아버지가 의미도 모른채 따라 웃으셨다 그리고 잠시후.부녀지간의 동태를 살피는 종동서에 전화가 걸려왔다 낮에 친정 아버지 오시는데 아버지가 내 속 디집어 놓을까봐 머리가 딱딱 아프다고 동서한테 그랬드만 종동서가 동생에 이어 확인 전화가 온거였다
이렇게 부녀지간의 단둘이 만남은
나를 알고 아버지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 이였다
지원조로 급히 투입된 인천 사는 형부와 언니의 대전 쯤 왔다는 전화를 받고 
엽기 부녀는 유난히 달달한 포도를 똑똑 따먹으며
화기애애 한 분위기가 잘익은 포도만큼 무르익어 갔다
아버지..
미워도 했는데
원망도 했는데
외면도 했는데
그러나.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기를 들고 계신 쪼글쪼글한 까맣게 탄 아버지의 손과
메마르고 건조해 주름이 깊게 패인 아버지의 목 주름을 본 순간

아버지에게 품은 그동안의 서운함이 부질 없음을 느껴야 했고

아버지는 더이상 미움의 대상 일수가 없는 종이호랭이 였던것을..
일박 이일의 일정을 마치고 떠나시던 날 .
형부에 승용차 뒷좌석에 유리창 너머로 배웅 하는 딸을 넘겨다 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딸도 있어야혀..아들 만이 자식이 아녀..암 암..'"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이건 나의 착각인가 ?
꼭꼭 숨겨진 아버지의 마음을 다음에는 만능키로 열어볼 참이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