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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가 되어버린 여자.


BY 도영 2004-11-04








동그라미가 되어 가는 여자가 있다
22년전에 그여자는 사각 식탁 같은 네모난 여자 였다.
세월에 풍파에 덜노출된 처녀시절이라 그여자는 모서리 끝이
아카시아 가시처럼 뽀족뽀족하니 누구라도 콕 찔리면 파상풍에 걸릴것 같은
닳지않은 모서리 같은 내면을 품고 시집을 왔떠랬다.
시댁에서 30여분 떨어진 경주에서의 1박2일에 신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후..
나를 기다리는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그외에 물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사고가 전혀 다른 시댁 생활은.
나를 네모에서 육각형으로 그리고 동그라미 같은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
순전히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
타의에 의해서 무너져 버린 처자시절 생속 같은 자존심 강한 여자는
시댁에서 살아남기위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적응 하기 위해 .
아니 더 분명히 말하자면 젖을 빨며 나를 올려다보던 첫아들과 눈이 마주치던 순간
내 새끼와의 생이별이 두려워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둥글게 날마다 갈아야만 했다.

그여자는..
약주를 과하게 드시는 시아버님의 그늘에서 벗어날 힘이 없기에
나를 포기하는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 했고
시댁에서 강자인 새파랗게 날이선 비수같은 어머니의 성질에 온순함으로 대하는것이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어머니에 성정을 잠재우는 길이라 생각을 했다.
고운 새댁 시절 깜빡 잊고 솥 단지 걸어두지 않은 장독대 옆 아궁이에
밤새 가을비가 내렸다 아궁이가 젖은탓에 잘붙지 않는 꿉꿉한 장작에 불을 붙이고자
어머니 에게 들킬새라 그래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새라
가슴쿵쾅 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신문지에 성냥불을 수없이 당기며
채 닳지 않은 나의 모서리에 정 맞을까봐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리치고 저리 받치는 시댁 생활은 카리스마 없는 둥글둥글한 여자가 되어야만 했는데
각이진 여자는 버틸수가 없기에..동그라미 같은 여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여자가 시집 온후 4년후 즈음 한살아래 동서가 들어왔다.
종부인 그여자는 도시에서 자라 허약 하다며
둘째 며느리는 시골에서 자란 며느리를 볼거라며 평소 장담 하신대로
시골에서 자란 그여자 동서가 들어오자
내 입장을 이해해줄것같아 가슴 설레이며 동서을 맞이 했다
하지만 동서는 이미 애가 둘인 윗동서인 그여자의 눈에는
내가 시집올적 사각의 식탁 처럼 네모난 생속이였다.
그 동서도 적응 하기위해 나처럼 둥글둥글 모서리를 닳아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를 바라보는 윗동서인 나는 그런 그녀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시도하다 실패의 쓴맛을 본 성공못한
쿠데타를 일으켜주기를 바랬던 적도 있었지만
막상 동서가 반란을 일으킬라치면
그렇게 나를 고단하게 했던 시 부모님 입장에 서서 아직 덜 둥글둥글 해진 동서에게
""보기 싫네...고만 해라.. ""단호히 동서 에게 일침을 가했는데..
그 여자는 평소와는 달리 전폭적으로 동서를 지지해 주지 않는
묘한 양면성이 이해가 안돼 스스로가 그 자신에게 혀를 찼었다.

그후 둘째와 막내동서가 들어왔는데
들어오는 동서마다 그럭저럭 내뜻에 잘 따라 주었고
간혹 성이 틀린 나를 비롯한 네 여자들의 덜갈린 날들이
한번씩 쭈삣쭈삣 머리를 들이밀라치면
그때마다 집안은 소용돌이속에 휘말리듯 빨려 들어갔고
그때 느낀것이 정면 돌파보다는 다소 돌아 가더라도 우회해서 돌아가는 방법을
터득을 하면서부터 그때 타협의 의미와 조화를 배워 나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를 버티게 해준 큰 아이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조국의 바다를 지키려고 해병대에 입대 하고 며칠후..
세수를 하려고 물을 틀다 목욕탕 거울을 올려다보니
목욕탕 백열등 아래 어딘가 눈매가 선한 모습으로..
지난 22년의 풍파에 동글동글 동그라미에 가까운 그여자가 거울속에 있었다.
둘째 아들 마져 멀리 대학을 보내고 시간적 으로 여유로운 동그란 아낙이 ...
조금은 슬픈듯한 ..그렇지만 안정적인 매무새로 거울속에 서있었다.


예전 ...막내 시동생이 입대 하는날
그토록 냉정하고 강인해 보이던 어머니가 펑펑 눈물을 뿌리는것을 보며
그독한 어머니의 눈물이 도저히 가슴에 닿지 않아.
""슬프신가?슬프실거야..""멀뚱 멀뚱한 표정으로
핑크색 우단 임신복만 만지작 거리며 슬픈척 했는데 내아이가 군에 입대 하던날
시어머니가 생각 난것은 왜일까?

작은 아이 마져 대학으로 떠나보내고 오던 날도 요상하게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아이의 짐을 싸서 대학 기숙사로 들여보내고 학교 정문을 나오는데
그날은 봄햇살이 찬란하니 학교앞 인도브럭 노점상 꽃집에 내리꼿혔다.
봄햇살 따사로움을 닮은 후리지아가 유독 내눈을 사로잡기에..
자동차를 그늘진 건물 담옆에 세우고 후리지아 두다발을 샀었다.
아마도 아들을 날개달아 떠나보내고 허전함에
그 허전함을 메꾸려고 후리지아 향을 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철사로 칭칭 매어 어설프게 건네받은 후리지아 꽃향을 코에대고 페부 깊숙히 들이마시는 순간. 나를 동글동글 하게 만들어놓은 친하고 싶지않은 시어머니가 또 생각 났다
의아심에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집에오니
나의 이십대중반과 삼십대 중반을 모질게 지배하시던
시어머니 전화 일것 같은 전화가 막 울리는 중이였다.
다급함에 신발끈도 풀지 않은채 엉금엄금 기어서 전화를 받으니
내 예상대로 시어머니 전화였다.
그날은 어머니의 전화는 가끔씩만 보여주던 듣기 힘든 온화한 말투 였다.
""내다.야야..아 보내놓고 허전치..?""
""아.어머니..허전티더...근데요 아를 기숙사 들여보내놓고 오는데 예전에 막내 삼촌 군에 보낼때 우셨던 어머이 생각 나니더..""
내 목소리는 울먹거렸고 눈물을 꿀떡 삼키는 맏며느리의 뜻밖에 반응에
""글나...고마 자그라..""
그날은 모처럼 고부간의 일맥상통함에 어머니나 나나 가슴이 쨘 했던거 같았는데
아마도 내 자식들과의 이별을 통해 어머니의 아들 키워 며느리에게 넘겨줬다는
어머니의 서운한 심정을 조금은 알것 같기에 어머니가 생각 난것 같기도 하다.

그랬다..22년전 사각의 각이진 철이없고 자존심만 내세우던 생속 이였던 여자는
강산이 두번 바뀌고 난후에 시어머니의 심정을 이해 하는
동그란 성격의 여자가 된것에대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덩그런 거실에는 주방에서 들리는 오래된 냉장고가 돌아가는소리만이
((윙))하니 들려왔다.마치 나의 허전함과 거실에 고요함을 달래기라도 하는듯이..
여자는 아이들이 떠난 텅빈 책상에 깔린 유리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출발한 시작점에서 빙 돌아 끝점을 찍으려다
아직은 완성된 동그라미가 아니기에.조그만 틈을 남겨 놓고 유리에 손을 떼었다.
아직은 내 동그라미안에 들여놓고 싶지않은 가족이 있기에.
조금더 세월이 흐르면 완성된 동그라미를 그릴수있는
동그란 여자가 되기위해 남은 모서리를 깍아내야 할것 같기에..발효가 덜된 그녀는..
마직막 점을 찍지를 못하였다..
내 아이들의 어릴적 학습지 를 매기면서 정답에 동그라미를 힘차게 매기듯
마지막 끝점이 시작점과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세월에 풍파에 아직도 도사린 끈질긴 내 내면속에 모난부분을
깍아 내고자 세월앞에 나를 널어놔야 겠다.
가끔씩 세제 풀어 손으로 휘휘 저으면 부글부글 거품일듯
세제 거품 처럼 분노가 끓여 올라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기에 ..
오늘도 그여자는 남은 모서리를 연마 해본다.
왜냐면 동그라미 같은 동글동글한 여자가 세상 살기는 더 수월 하므로...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