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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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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을했습니다


BY 밥푸는여자 2004-05-02


아침을 부르지 못한 새벽은 고요합니다
깊은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아 새들 조차 푸덕푸덕 날개짓만 할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잔 이슬비가 굵게 침묵하며 흐르는 강에게 말을 건네다 머쓱하니
내게로 오는가 봅니다 코끝에 촉촉한 물기운이 닿는 것을 느끼니요

멀리 보이는 정자엔 한 사내가 앉았습니다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았는데 몽글몽글 흰 구름이 입에서 토해져 나옵니다
수십년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강을 지키고 숲을 사랑하던 사람 같습니다
평상시 긴 목을 위로 쭈욱 빼고 모노음의 미운 소리로 나를 부르던 거위도
활의 현 보다 더 부드러운 곡선을 갖고 수면과 공간의 미美를
아름답게 그리며 흘러 가던 백조도 목을 부드러이 제 가슴에 묻고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인 숲에서
빠져 나오면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 낯선 이방인이 낯선 집
대문에 서 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동화같은 겁이 났습니다

이곳 숲에 봄이 오기엔 더 긴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하늘과 땅위 공간을 가르던 나무 가지의 線들은 여전히 재색이고
제 몸을 돌돌 말아 웅크리고 있는 새순들은 가느다란 눈만 떳다 감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는 새벽 숲에서 난 삶을 찾습니다
이리저리 갈라진 땅 틈새로 지렁이가 꿈틀 거리고 나옵니다
깨끗한 땅에서 산다는 지렁이를 보니 반가왔습니다
어릴 적 비가 온 후 보였던 지렁이는 징그럽기만 하더니 이제
도톰한 지렁이들의 생태를 보니 밟고 있는 땅과 눈 앞에 차 오르는
공기가 깨끗함이 증명 되는 것 같아 반갑고 좋았습니다

온 몸이 찬 기운에 떨려 오기 시작 했습니다
머리가 젖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만큼이나 따스함을 느끼게 하던
목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옵니다 보이지 않는 이슬비에 걸친 옷 뿐
아니라 뼈속까지 찬 기운을 느끼는 것을 보면 미세한 것 일수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누군가
내 목소리가 작다고 답답함을 호소 했지만 그마저 크게 바꿔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삶이, 내 마음의 진지한 호소력이 작은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
설득력있는 '말'의 소유자가 되고 싶습니다

돌아와 한시간을 넘게 따뜻한 양털 이불 속에 몸을 맡겨 보았지만
한기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욕탕 안으로 들어갔지요 뜨거운 물 줄기가
벗은 몸을 칩니다 추운 기운을 몰아내 가는 것 뿐 아니라 내 속의
생각까지 쳐 내려 가슴이 뜨끔뜨끔 아픕니다
매끄러운 비누 거품이 흘러 발끝을 간지럽힙니다
한기가 가시고 향긋한 비누 내음에 달콤함이란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향수를 허공에 뿌려 뵈지 않는 여린 향기의 공간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오감을 통해 내 육신에 덕지덕지 끼인 감각과 생각들을 말끔히
씻어 낼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의 말씀의 채로 나를 때리고 씻어 내고 그 향기로 내 발걸음이
일으키는 바람 마디마디에 그 향을 실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작은 이슬비 몇 자락이 온 육신을 적시다 못해 뼈 속까지
한기를 느낀 몇 시간의 흐름에서 내 삶의 수 많은 말과 생각들로
지어진 미움과 원망, 시기와 반목, 정결치 못한 욕심의 집을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생각의 뜰에서 나를 씻겨 내는 연습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