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들과 통화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개구쟁이 울 아들은 엄마가 일 가고 집을 비운 사이에 많은 모험을 감행했다고 한다.
학원간다 하고 PC방 가기, 대형할인점 시식코너 한 바퀴 돌며 배 채우기, 불장난하기, 에스켈레이터 누워서 내려오기 등. 혼자 심심했던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며 다닌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읽혀 찡했다.
이런 부류의 이야기야 철이 든 고등학교 졸업 후 가끔씩 아이와 주고받으며 웃어넘긴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 내심 놀랬다.
초3 쯤 학교 점심시간에 친구와 학교 맞은 편 집에 와서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데, 문이 들꺽 열리며 아빠가 들어오더란다. 이제 죽었구나 싶어 둘 다 얼음이 되어 있는데, 아빠는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는 평상시와 똑같이 친구와 잘 놀다 가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아빠의 모습 속에서 아이는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아무 기대도 안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날 밤, 낮에 아들이 집에 있었다고 전해 들은 엄마의 불호령과 긴 잔소리는 아무 기억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오빠와는 5살 차이 나는 딸은 어리지만 야무져서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 해 냈다. 입 댈 것이 없었고 기대가 컸다. 그런 딸이 초등 4학년 때 세균감염이 된 귀를 긴 머리로 숨기고 다니다가 들켜서 아빠에게 불호령을 맞은 적이 있었다. 살면서 남편이 딸에게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연히 딸과 이 이야기를 하는데, 고2가 된 아이는 아빠에게 야단맞았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딸이 기억하는 그날은 아빠가 자신을 무척 걱정하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겉으로 내는 소리와 모양이 어떻든, 사람은 애나 어른이나 어찌나 그 밑 마음을 용하게 알아보는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