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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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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장씨.


BY 손풍금 2004-10-23

그 남자가 나를 보고 걸어오면서 웃던 웃음이 얼마나 큰지 난전에 서 있던 나는 그만 엉겹결에 따라웃고 말았다.
내 앞에 멈춰선 그 남자에게 "뭐 찾는거 있으세요?"할때,
"이런 곳에서 고향분을 만나니 반가워서..."하는데 남자의 눈에 매달린 돗수높은 안경이 어지러웠다.

"저는 지금은 '까르푸백화점'이 들어선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4층건물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전자대리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지금은 '베스킨라벤스 아이스크림점'이 되어버린곳에 있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계셨지요. 맞지요?" 하는 남자의 말을 듣자
나는 베스킨라벤스의 망고탱고를 먹은듯 속이 싸아해지면서 달착지근한 감미로움이 찾아들어 그 선량해 뵈는 남자가 금방 반가워졌다.

'그런데 그런걸 어떻게 아세요?'

"그냥 알고 있습니다."하는 그 남자의 얼굴이 참말로 반가운 표정이다.

"그런데 여기는 ..."

"그냥 쫄딱 망하고 쫓겨다니다 어떻게 이곳 시장까지 들어오게 되었네요."하며 팔을 들어 가르킨곳은 양파담은 바구니 몇개, 감자 담은 바구니 몇개, 파몇뿌리를 좌판위에 올려놓은 야채파는 곳이였다.

"...그렇군요. 많이 힘드시지요. 그래도 열심히 하시면 꼭 길이 있을거예요.
힘내세요."했고 남자는 고맙다고 하며 돌아갔다.

이렇게 그 남자 장씨를 알게된것은 지난 봄이였다.
다섯장중 두번의 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품목이 바뀌었다.
두부를 팔다가 멸치를 팔다가 오징어를 팔기도 했는데 파는 물건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그 만큼 장사가 안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사가 되든 안되든 어쩌다 나하고 장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 남자 장씨는 두 손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최고라 힘을 실어주며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는 했는데,
어느날 건너오는 소문으로 그 남자의 아내가 자궁암에 걸렸다며 몇날 자리를 비웠다.
보름만에 다시 장터에 나온 그 남자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있었다.
쫓기고 도망 다니다시피 하며 살아가는데 보험은 들었을리 만무하고 하루 하루 병원비 충당하기 힘들어 그날 팔은 얼마간의 매출은 다음날 물건할 돈도 없이 병원비로 들었갔을 터이고 ,... 아니 그렇다고 했다.

  벼랑끝에 선 사람이 무슨마음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지 그런 것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같은 시간을 지나 온 후 인지라 근심 가득찬 얼굴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그 안에 들은 생각이 당체 이루어질수 없는 허망한 공상을 하고 있다든가 앞으로 뒤로도 물러설수 없이 현실을 고스란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생각 따위일것이라것은 내가 얻어낸 심미안이다.
어디를 봐도 선량했던 사람이니 난전에 앉아 돌아가는 사정을 생각하면 그 타는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그때 누군가 군밤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북한산 밤을 받아다 팔면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고, 이어 장씨는 트럭을 팔아 치우고 밤굽는 기계를 샀다고 시장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왔다.
동향이라고 환한 웃음을 들고 왔던 장씨는 내게 찾아와 그동안 장터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도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 날 나는 만원권 몇장을 두 눈 질끈 감고 빼내어 장씨와 그 동안 옆에서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주었던 동료장꾼 몇사람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고깃집에 둘러앉았다.
 "실컷 드세요. 그리고 어디가도 힘내세요. 절대 용기 잃지마세요. "했을때 장씨는 허허...하고 웃는데 나는 설핏 그 웃음이 젖어있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 하고 나는 호기와 허세를 부리며 주인을 향해 주문을 거듭외쳤다.

장씨가 떠나고 장씨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장씨는 곧 잊혀져갔고 저마다의 위치에서 소리쳐 손님들을 불러모으지만 장터에 찾아든 불경기를 실감해하며 모두 우울해 있는 요즈음.
파라솔위로 물건위로 떨어진 낙엽이 뒹굴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무릎을 모으게하던 오늘,

"밤장사한다고 떠났던 그 장씨가 말여. 지금 통영에서 고깃배에 오르고 있다고 전화를 했다네. 잘 있으라고, 자네들이 부럽다고...
젊은 사람들도 폐인이 되어 내린다는 그 힘든 고깃배를 탔다네,
술좋아하는 사람이 술힘으로 일하려나, 그 장씨가 몇살이지, 쉬흔살이라고 하지,
부인은 어떻게 되었다는데? 담배좀 한대만 빌려줘봐. "
하는데 나는 안들은 척 고개를 쳐박고 손에 쥔 라디오만 문지르고 있었다.

나이따위는 세월따위는 상관을 하지 안했는데 장씨 아저씨가 쉬흔살이 넘었었나?
장씨 아저씨에게 희망을 말한다면 이제 비웃음이 되겠네.
이제 곧 겨울이 되어 얼마나 추울껀데... 그것도 사방이 휑하니 아무것도 없는 바다위에서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으면 고깃배에 올랐을까.
거기서도 동향인 사람을 만나 위로가 되기라도 한다면...
빌어먹을 세상...하고 욕이라도 할줄 알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