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에 쓸쓸한 가을은 원예농협 화단위로 햇살을 모으고
그 안에 피어있는 노란 분꽃, 진분홍 분꽃은 나란히 얼굴을 마주한게 그 사이 정분난게 틀림없어 보인다.
분꽃이 내려다 보고 있는 화단 아래가 향긋한 코티분을 시세이도를 풀어놓는 내 화장품전이다.
자리를 깔고 물건을 펴는데 반짝반짝한 구두코가 눈앞에 딱 멈춘다.
누구인가? 올려다 보니 구 시가지 변두리 '돈텔마마'지배인쯤 되지 않을까.
"뭐 찾는거 있으세요?" 서둘러 물건 펴던 나는 상냥해진다.
"...찾는거는 없고, 아줌마, 오늘부터 여기서 장사 하지마세요."하고 한껏 거만한 폼으로 재고 있다면 내 시력이 잠시 휘청거리고 있어서 일까.
"왜요? 여기서 늘 했는데... 여긴 노상이고 장터가 형성되는 자리인데... 왜 하지 마라고 하세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는 속으로는 마음이 급해져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천진하게 말한다.
전혀 무슨말인지 알지 못한다는 듯이, 당신 지금 자다 봉창두드리지요.
이 당혹스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듯이...
"나는 이 건물에 새로온 지배인이요.
건물주가 잡상인들은 앉히지 말라고 했으니 나는 명령에 따를뿐이고 아줌마가 치우지 않는다면 오늘저녁 올라가서 시말서를 써야되니 좋은말 할때 빨리 치우세요."
잡상인?
......잡상인?
나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는데 거리에 나앉아 궁지에 몰린 내 자신이 안쓰럽고 안타까워 얼굴에 피가 몰린다.
어차피 가을이면 다섯장중 한장을 줄일 생각이였는데 공주장을 빼낼 생각이였다.
그래, 오늘만 하자. 어차피 오지 않을 장이니까. 생각이 이쯤 미치자 공손하게 응대해야 되겠다 싶었다.
"저때문에 아저씨가 피해를 보시면 안되지요. 그럼 오늘만 하고 가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가 여지껏 여기서 해온 장자리이니까 오늘만 하고 갈께요. 그리고 다음 장부터 안오겠습니다. 그러면 됐지요?"
검은 남방입은 남자는 내말은 안들리는지,
"아줌마, 물건 펴지 말라고 했지, 나 머리에 뚜껑열리는거 볼라고 하나? 빨리 접어요.' 하며 내 앉아 물건 펴는곳으로 한발자욱 더 다가선다.
내 심장소리가 밖으로 넘쳐나는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에 뚜껑이 열린다네... 참말로...누가 할 소리를...ㅡ.ㅡ;)
"빨리 빼라는데 내 말 안들려요?"
"오늘 온거니까 오늘 하루만 하고 갈께요."
"아... 필요없어요. 빨리 당장 물건싸요."
... 바보같이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는 이 낯설고 함부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견딜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 말 안들리느냐고, 빨리 싸라니까..."
나는 이 무례한 남자앞에 벌떡 일어나서 무슨소리를 내뱉었는지, 정신이 없다.
"관리인도 벼슬인가 봅디다. 나한테만 와서 그러는 이유나 좀 압시다. 내가 오늘을 끝으로 공주장을 접을려고 했는데 앞으로 이자리에는 꼭 나와야 되겠어요. 댁의 무례함때문에라도요. ...."하고 횡설수설 화가 나는데로 분이 넘치는대로 소리친 듯 싶다.
노란분꽃, 진분홍분꽃은 가을햇살아래 정분나 얼굴을 나란히 맞대고 소곤거리고 있는데 말이지요. 천지간에 저만 혼자 슬픈거예요.
제가 앉아있으면 키가 작은듯 싶어도 벌떡 일어서면 크거든요.
목소리도 크게 내면 사람들이 놀래요.
이 무례한 남자, 제가 달려드니까 당황했던 모양이예요.
그러고는 나한테는 아무 감정없다고 주인한테 허락맡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주인은 이층건물 병원 원장이라나요.
눈 있는데로 흘기고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관리인 이라는 자 당황하며 진짜 가느냐고 묻더라구요.
"네... 갑니다. 댁하고는 이야기하지 않을겁니다."
이층 병원에 올라가서 원장과 이야기 했지요.
여차저차해서 ... *&^%$##ㅆ& 장사 하게 해주세요.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여지껏도 해왔고 장날만 하는건데 이 상황이 되니 꼭 해야 되겠습니다.
그 원장님,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여러명이 쓰는 건물에서 가계주인들이 자신에게 항의를 해오니 어쩔수 없다고, 정 그렇다면 관리인하고 다시 상의해서 좋은쪽으로 해결하라고,,, 난처해 하시더라구요.
실례많았다고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그 관리인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원장님이 허락하던가요. 당장 치우라고 하지요?, 치우세요."
나는 많이 힘들고 지치더라구요.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저 무례한 남자하고는 두번다시 이야기 하기 싫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일.
원예농협 뒷쪽, 주창장 옆 공터에 앉아 있는데 정말이지 화가나고 창피하고, 참담하고, 업신여김 당하는 듯 너무 너무 다 싫더라구요.
그래도 생업인데 부당하게 쫓겨나는건 싫고 꼭 해야 되겠다 싶은 오기가 불쑥 솟더라구요.
문학모임에서 어여뻐해주시는 선배님이 한분 계신데 아주 저명한 내과 원장님이신데 제가 한잔만 술을 마셔도 꼭 대리운전을 붙여주시던 송원장님이 불쑥 떠오르더라구요.
어려운 일 생기면 꼭 연락해요. 했던...
이게 어려운일 인가요? 몇번 혼자 반문해보았습니다.
생업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는 일,
목소리를 견주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야 하는 일. 싸워야 한다는 것.
싫은 소리를 듣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
억지를 부리고 오기를 부리며 서로에게 목청을 높여 눈을 부라려야 한다는 것.
참을 수없는 일이였어요.
전화를 했는데 반가워 하는 목소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어요.
무슨일이냐고, 몇번인가 되물을 때.
"부탁 좀 할께요. 원장님 제자리 좀 찾아주세요."하고 말았어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원장님께서는 그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라고...마음아파 할 일이 절대 아니라고...
잠시 후,
저를 달래주시던 원장님,
"가봐요. 이제 다시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거예요. 혼날라꼬..."
구리무장사는 간데 없는데 정분난 노란분꽃과 진분홍분꽃은 가을햇살에 도란거리며,
제 주인은 무슨일이 있는 지도 모르고 구리무는 향기를 품고 있는 공주장.
잊을 수 없는 참담한 장거리.
이제 하루 쉴까 생각했던 공주장 접지도 못하게 생겼어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