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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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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날.


BY 손풍금 2004-09-24

추석을 엿새 앞둔 대목장날.
말이 대목장이지 작년 매상 반도 안된다며 한숨짓는 장꾼들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일찍들 자리를 잡고 손님맞을 준비에 분주한데,
사람들 발걸음 몰리는 곳은 햇밤 털어 가지고 지게에 지고 온 할아버지의 난전 앞이고 , 밭에서 캐온 도라지 세숫대야에 담아 다듬고 있는 할머니 앞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산 농산물이 아닐것이라는 확신 하나에 몰려드는 손님들 앞에 두고 할아버지, 할머니 차례차례 줄서라 소리치신다.
금새 동이 나버려 빈지게 지고 가는 할아버지, 빈대야 들고 가는 할머니 주머니 불룩해진 것이 흐뭇한 마음이 되어 바라보고 있는데 그 빈 자리로 들어오는 장꾼은 익숙한 얼굴이였다.
 
지난 장마철엔 이천원짜리 구두약을 팔고, 
여름이 다 갈즈음엔 천원짜리 부채를 팔고 ,
어린이날엔 코주부 안경을 팔았던 박씨 아저씨.
오가는 아저씨에겐, '이장님, 과장님'불러가며 소리를 질렀고
오가는 아줌마에겐 '싸모님, 여사님'해가며 느끼한 눈길로 손님을 붙잡던
파는 품목마다 안타까운(?) 물건을 들고 오던 박씨 아저씨가 드디어 대목을 앞두고 나타났다.
서로 낯익은 얼굴이라 지난 여름 엄청난 무더위에 어떻게 지냈느냐 안부를 물으니
'너무 더워서 날이 새면 은행가서 지냈슈, 미안해도 어떡하것슈, 너무 더워 살수가 없으니 은행가서 있다 퇴근하고 했슈.'한다.
과일장사 김씨는 '그럼 지난 여름에 장사는 안했는가벼.'하니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지유, 나는 병이 있어 더울때 거리에 서있으면 꼴딱 넘어가유. 넘어가는 거보다 눈치보이더라도 은행에 앉아 쉬고 이렇게 시원해지면 또 다시 나와 일하는게 나은거 아닌가벼유. 그래야 약값이라도 하지유.안그래유. 싸모님?'
김씨보고 이야기 하다 마무리는 내쪽으로 친다. 흐이구. 싸모님은 무슨...
 
'그러네요. 맞는 말씀이네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합원도 아니면서 은행 주고객도 아니면서.ㅡ.ㅡ; 아저씨나 나나 올여름 은행에가서 더위 식히느라 신세지기는 마찬가지였네요.) 했다.
그나저나 늘 안타까운 물건만 들고 나오던 아저씨,
이 가을엔 무엇을 들고 나왔나 궁금했지만 남녀가 유별하니 가서 무엇을 들고 나왔냐 물어볼수도 없는 일.
박씨 아저씨, 손에 물건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장보러 나온 지나가는 사람 붙들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판매수법을 바꿔 한단계 직급을 높였는지,
이사님~! 사장님~!으로 시작되서 회장님~!으로 마무리를 짓는데는 시골영감님도 마찬가지겠지만 바라보고 있는 나도 혼이 나갈일이다.
손에 들은 물건은 면도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면 달려들어 턱쪽으로 면도기를 들이대며
'이사님, 이 면도기로 털깎으면 얼굴이 훨씬 잘 나보이고 금방 회장님 되는데'하면  '이거, 이거, 이 사람이 왜이래. '하고 고개를 휘휘 젖고 피해가는 사람이 태반.
그래도 이사님, 사장님으로 불린 가을 곡식 걷이 하다 나온 아저씨들은 갑자기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걸어가다가 뒤한번 슬쩍 돌아보며 지금 얼굴위로 왔다 간게 무엇인가 쳐다보는데
나는 안보는 척 하면서 몰래 몰래 쳐다보다가 '하이고, 저 아저씨 진짜 못말리겠네. 켁~!'
 
그때 (핸드폰 다방) 건물 계단에서 아가씨 내려오는데 박씨 아저씨, 아가씨에게 득달같이 달려간다. 
아가씨얼굴에 기계를 갖다대니 긴머리 아가씨, 비명을 지른다.
'뭐예요. 아저씨'화를 내자 ,
'이거. 코털깎이유, 아니면 겨드랑이 털도 깎고...'하고는 코털 깎는 시늉을 내니
'뭐 이런 아저씨가 다 있어. 아저씨나 깎아요.'하고 있는대로 눈을 흘기며 또각 또각 성난 구두소리를 내며 사라지는데, 박씨 아저씨 무안해 하지도 않는다.
그모습을 바라보던 과일전 아저씨는
'어이, 박씨, 거 좀 팔리는 것 좀 가지고 다녀. 어떻게 팔아도 그렇게 희안한것만 파냐.'하니
'남 안파는것 팔아야 그게 장삿꾼이지, 그리고 이게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줄 아나. 하는데는 웃음이 실실 나왔다.
'안그래유. 싸모님?' 이번에도 말을 하다 나한테 말끝을 돌린다.
(아이고, 저 느끼한...내가 만만한가벼, 혼날라꼬...ㅡ.ㅡ;)
 
쉽게 팔리지 않는 코털깎이, 쉽게 팔리지 않는 중국산 면도기.
'아저씨, 요즈음 경기도 안 좋은데 너무 직급을 높여서 불러서 더 안팔리는 거 아녀유. 예전 처럼, 그냥 이장님, 과장님으로 하세요.'했더니
'그렇치유? 아무래도 그러는게 낫것지유. 나두 이장님, 과장님이 더 좋아유. 원체 안팔리니까 별짓을 다 해보는거지유.'하는데 아저씨의 혈액투석한 팔뚝이 더 울퉁불퉁하다.
오가는 사람 붙들고 씨름 하다 지친 아저씨, 일당은 하셨는지 따가운 가을볕이 넘어가자 땅바닥에 주저 앉아 쉬고 있다.
맞은편 수도꼭지 파는 아저씨는 도통 손님 붙는것을 못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리어카 앞에 놓고 먼 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해는 뉘엿뉘엿 서녘하늘로 넘어가고 파장은 시작되고
채소나 과일을 실은 차떼기들은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높히는데
 
'어, 이게 뭐꼬...
땅콩 아이가... 땅콩.
갈 길은 멀고 땅콩은 억~쑤~로 남았고
에이... 모르겠다. 한바가지에 천원. 천원입니데이...
갖고 가이소오~~~'
 
(충청도 시골장에 와서 돌아갈 길 멀은 경상도 아재... 많이 팔고 가이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