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위를 지나가는 낡고 오래된 차에 앉은 나는 눈물이 핑 돌만큼 4월이 행복했다.
날마다 찾아가는 장터길엔 춘정에 무르익은 봄꽃들이 제 향기를 쏟아놓고 격정에 휩쓸려 혼절해버린 봄날에 나도 꽃잎처럼 흩어지고 싶었다.
장터에 도착해 물건을 펴고 손님들이 찾아와 화장품을 권해주고 나니 아직 점심때도 안되었는데 배가 고프다.
원두커피 가득 담아온 보온병을 열고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니 속이 풀린다.
오늘은 보리쌀을 파는 아저씨가 안나와서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전신주 앞쪽으로 만물상이 있고 그 윈도우 앞에 작은 벽 모서리가 있어 등을 돌리고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폈다.
옆자리 언니는 음식솜씨가 좋아 언제나 처럼 미나리, 시금치, 돗나물, 애기배추를 삶아 무쳐 가지런히 담아왔다. 악세사리 파는 언니는 윤기나게 조린 오징어를 싸가지고 왔다.
나는 반찬통을 안열었는데...
" 뭐 맛있는것 싸왔길래 안열어. 혼자 먹을라고?
"흉보지마요. 언니"하고 반찬통을 조금만 열었다.
어젯밤 양파, 마늘 갈아놓고 매운고추 쫑쫑 썰어놓고 진간장 으로 조린 번데기다.
이거 해놓고 밤 12시에 밥 두그릇 먹었다. 번데기가 하도 맛있어서...그런데 언니들은 번데기 먹으려나.
"어, 번데기다, 야아~. 나 번데기 좋아해" 수저로 푹 떠서 먹는데.. 아.. 다행이다.
"맛있지 언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겠지?... 히히 "
한입 먹는데 "화장품, 손님왔어"하고 부른다.
"네"수저를 놓고 밥을 꿀꺽 삼키고 뛰어간다.
*
황사가 찾아든 장거리,
부는 바람에 날아드는 흙먼지가 육안으로 잡힐때도 있지만,
거리에서 앉아 나는 절대로 절대로 밥은 먹지 않겠다고 혼자 수없이 약속했지만,
물건을 깔아놓은 내 소중한 터전을 비울수 없어 어쩔수 없이 거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아니, 이젠 어쩔수 없음이 아니고 어는 누구의 시선 따위를 느낀다는것조차 사치스러움으로 남는 두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이기에..
귀한 시간 축내지 않음으로 내자리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되어 이제는 거리에서 먹는 밥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금새 찬합이 비었다.
흙먼지가 일어 손에 장갑을 끼지 않으면 금새 손이 더러워지고 거칠어지는데 화덕증이 나서 장갑을 끼지 못하니 손톱에 때가 끼고 손가죽은 세월을 앞서 늙어간다.
삼단같아야할 머리는 강한 햇볕에 탈색되어 부서질듯 메말라지고 무방비한 얼굴은 까매지고 있다.
금은방 유리문을 통해 언뜻 비추어본 내 모습은 영락없이 오래된 장꾼으로 변해가고 있다.
부끄러움도 수줍음도 모두 놓아버리고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거리에 주저앉아 당연한듯 먹는것을 해결하고 입을 벌리고 웃어대고 소리를 지르고 나는 이제 그다지 부끄러울것도 창피한것도 없이 수치심도 잃어버린 억센 여자로 변해가는것인가.
그렇치 않고 싶음이 간절하다 해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길.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위를 지나가는 낡고 오래된 차에 앉은 나는
눈물이 핑 돌만큼 꽃이 피고 지는 4월에 더없이 행복했다.
그 4월에 아주 짧은 소설을 쓰고 싶어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서 기차역으로 갔다.
새마을호를 부탁했지만 직원은 고속전철을 권하며 표를 건냈다.
잠시 시간을 건너 오는것 처럼 빠른 속도에 속이 빈것같이 걸음걸이가 휘청거려지는게 자꾸 시계를 보게되고 어지러워 뒤를 돌아보았을때 산야도 거꾸로 나를 두고 가는것 같았다.
창이 넓은 방에서 오래도록 북쪽에 있는 산을 바라보며 숨어있던 이야기를 조금씩 제자리로 옮겨놓으며 어둠에 묻혀가는 도시속에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길에는 역사 마다 쉬어가는 정든 기차를 탔으며 밤에도 익어가는 꽃의 이야기에 귀가 열리며 꽃잎 지는 소리가 오래도록 따라왔다.
옆자리에 앉아 고른숨소리를 내는 아이의 얼굴이 꽃을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