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가 유난히 까맣게 빛나는 낯선 이국여인들이 무리지어 장을 보러나오고 그 뒤로 그녀들의 남편인듯한 남자들이 뒤따른다.
때론 그녀들의 모국어로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며 깔깔거리다 가끔 뒤를 돌아보고 한마디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장가못간 농촌총각의 국제결혼은 시골장터에서 쉽게 확인할수 있다.
이국의여자와 늙은어머니가 내좌판앞에 앉는다.
"우리애기 바를 화장품좀 줘봐요"하는 늙은 어머니
이국의 여자는 말을 더듬거리며
"어머니, 많이 사도 되요?"한다.
"그려, 얼마치나 살라고, 안발라도 이쁘구먼, 많이 사, 일 하느라 고생 많이 혔는디."
이국여자는 화장품을 고르기 시작한다.
똑 같은것을 세가지씩 골라놓는다.
로숀도 세개, 크림도 세개, 스킨도 세개. 분도 세개 입술연지도 세개..
늙은 어머니는
"야가 욕심도 많으네, 다음에 또 사줄께, 하나씩만 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사가면 못써, "
"아..니요, 어머니꺼 하고 내꺼하고.."
"내꺼? 하이고, 나는 안발라도 되고 얼굴 땡기면 니 아버지꺼 바르면 된다.
아버지꺼 몇개나 있다. 사놓고 안바른거, 서울사는 너의 둘째형님이 저작년에 사가지고 온거 아직도 남아있는디, 썩기전에 발라야지, 니꺼나 사, 야가 인정은 많아서, 내껀 걱정말고 니꺼 나 사, 그럼 또하나는 누구껴?"
".......이건 우리 엄마꺼,"
"어디, 저기 베트남 엄마꺼?"
이국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망울을 늙은 어머니의 얼굴에 맞추며 조심스러워진다.
"붙이는 우표값이 더 든다, 그건 다음에 참깨 털어낼때 사자,
그때 애비 옷도 사고 너 옷도 사줄께, 오늘 고추낸거 농협에 빚갚어야 혀,
오늘은 니꺼나 사고 다음에 사자, 어여 일어나, 공판장에 가서 손주놈 우유도 사야혀"하고 서둘러 일어난다.
"다음에 사줄꺼예요? "하고 이국의 여인은 늙은어머니를 향해 확인한다.
"그려, 다음에 사줄께, 참깨 낼때"하고 앞서 걷는데
나를 보고는
"아줌마, 다음장에 올꺼예요? 그 다음장에도 와요? . 꼭 와야 해요"하고 확인하는
이국여인을 뒤에 두고 늙은 어머니 걸음걸이는 쓰러지지 않는 바람처럼 휭하니 멀어져간다.
"네, 꼭 올테니 이리로 와요. 얼른 가봐요. 어머니한테"
"네.."
이국의 여인은 등에 엎힌 아기를 추스리며
"어머니.. 같이가요"하고 뛰어간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인도차이나"를 조기상영과 함께 세번이나 본적이 있었다.
하노이의 인력거와 키큰 나무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월남여인의 긴머리가 찰랑릴때마다 촘촘히 숨어 흔들리던 비애,
그 눈망울을 지금 보았다.
더불어 늙은어머니의 감추어진 한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