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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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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한 약속


BY 낸시 2020-09-27

이십 년 전, 폐결핵 진단을 받고 한동안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치료를 강하게 권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난 죽어도 별 불만이 없어. 아프면 그냥 죽을 꺼야. 병원에 누워 있기 싫어.
하지만 더 살면 해보고 싶은 일이 딱 하나 있긴 하지.
산을 하나 통째 정원으로 만들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내가 심은 꽃과 나무로 채우고 싶어.'
남편은 소원대로 산을 하나 사줄테니 의사가 권하는 수술을 하자고 하였다.
수술을 하면서 남편에게 하나 더 다짐을 받았다.
'온실도 지어줄 꺼야?'
남편은 선선히, 그것도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그 후 이민을 오고 식당을 시작했다.
식당을 개업하기 전부터 주변 땅을 정리하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식당보다 내가 가꾸는 꽃밭이 먼저 소문이 났다.
주요 일간지 경제면 표지에 대문짝만한 사진도 실리고 시에서 주는 감사패도 받았다.
별 볼 일 없는 내 꽃밭에 감탄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산 사주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좋아.
대신 식당을 많이 많이 하게 해줘.
산 대신 식당 주변에 꽃밭을 만드니 같이 즐길 사람이 많아 더 좋아.'

우리가 개업한 식당이 다섯이나 되니 그만하면 남편은 약속을 지킨 셈이다.
개업하는 곳마다 꽃밭을 만들었으니 원하는 대로 실컷 꽃밭을 만들어 보았다.
지금 하는 식당에도 꽃밭을 보러 온다는 손님들이 꽤 많다.
식당에 있던, 집에 있던, 꽃 속에 묻혀있으니 좋다.
그래도 가끔, 온실을 만들어 준다더니 약속을 안지켰다고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점심에 외식하러 가서 친하게 지내는 권사님을 만났다.
'권사님, 우리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내 말에 섭섭하다던 권사님이 한국에 가서 정원을 크게 만들라고 하신다.
내가 만든 정원을 보러 꼭 한국에 갈거라고 한다.
옆에서 듣던 남편이 이번에는 온실을 지어주겠다고 한다.
내가 투덜거릴 때 아무 반응이 없길래 온실을 지어줄 맘이 없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보다.
남편이 온실을 지어준다니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기대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가려먹고 그 날을 위해 건강을 챙겨야겠다.

평생원수와 천생연분은 같은 말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남편 때문에 살기 싫다고 했더니 남편 덕분에 살고 또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