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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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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농민전쟁에서 1950 전쟁 사망자


BY 이미래 2005-06-16

 

 

갑오농민전쟁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3남일대

 

약   가족과 농민20만명

 

1907년.8-1914년 항일 의병

 사망 1만 6700명  부상 3만 6770명

 

1919.3.1-5.31삼일독립운동

사망 7509명  15961명 부상

46948명 검거

 

1920년 경신년 독립군 토벌

간도 3만명 사망

 

 

1948.4.3제주도 민중항쟁

약7만명 사망

 

1950년6.25-1953년 7

민간인 약 500만명 사망

 

**1950년 6.25일 전쟁이 나고 조선 인민군은 서울을 비

롯해 대전 대구 그리고 몇몇을 제외한 전지역을 조선 인

민군 치하였고 그아래에서 항일 혁명세력등은 인민정권

수립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1950년.9월 주한 연합사가 인천상륙을 통해 서울에 입성

하자 서울이남에 남아 있던 조선 인민군 소속 부대는 후

퇴를 행하게 되며 지리산 태백산줄기를 타고 계속 후퇴

를 하였고  항일혁명세력[민간인과 빨치산]은 이후 전쟁

이 끝날때까지 부역자나 사상범으로 처형당하여 사망하

였다

 

따라서 남한 전지역에는 6.25 전쟁 당시의 조선 인민군의

유해와 민간인 혹은 국군 경찰 유해가 있었고 그 대부분

은 찾아매장 하였으나 민간인 혹은 인민군 유해는 그 수

를 알 수 없다

 

북한 지역에 남아 있는 연합군 소속 미군 유해와 국군의

유해 민간인 그리고 당시  중공군 유해가 있을 것이며 그

대부분은 찾아 매장 하였거나 일부 민간인과 국군 그리

고 미군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전쟁중에 사망은 그 희생을 수치로 말하기 어렵다

 

연합사 소속 주한미군의 유해와 중공군의 유해는 찾아

전해주고 외국 군대는 철수 하여야 한다

 

국군과 조선 인민군 그리고 민간인은 이땅 산하에 묻혀

있으므로 조국의 품으로서 인정하여 그 유해를 일일히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 참고 조선통사[사회 과학원 역사연구소]

한국사의 이해[방송대학교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