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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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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BY 낸시 2020-09-22

그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기만 하면 꽃밭이 되는 줄 알았다.
앞뜰도 뒷뜰도 온통 꽃과 나무로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쁘지가 않다.
이쁘지도 않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심었다고 끝이 아니고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데 내 발길에 꽃과 나무가 밟혀 죽기도 한다.
밟지 않으려 애쓰다보니 어디에 발을 두어야할 지도 모르겠다.
감상하기 좋고 관리하기 쉬운 방법이 없을까...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으니 남들이 어떻게 하는 지도 궁금하다.
수목원이나 꽃박람회도 찾아다니고 아름다운 정원을 찍은 사진도 자주 본다.
거기엔 있는데 내 꽃밭에 없는 것이 있다.
꽃과 나무 사이로 난 좁고 구불구불한 길, 오솔길이다.
맞아, 길을 내면 감상하기도 관리하기도 좋겠다.
내 꽃밭 사이에도 오솔길을 만들자.
오솔길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금방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꽃과 나무 몇 포기 심는 것과는 달리 나 혼자 해내기 벅찬 대규모 공사다.
남편을 꼬드겨야지.

남편을 꼬드기는데 몇 년이 걸렸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니, 남편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둘이서 뜻을 모아 오솔길을 만들기로 했다.
돌도 구해오고, 흙도 두 트럭이나 샀다.
자주 싸우는 우리 부부가 이런 일을 할 때는 천생연분이다.
일을 할 때는 싸우지도 않고 손발이 척척 맞는다.
둘이서 한 달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달려 드디어 집을 빙 둘러 오솔길을 냈다.
집 앞 야자수를 둥글게 도는 것부터 시작해서  뒷뜰로 갔다.
뒷뜰을 빙둘러 옆을 통과해서  집 앞의 다른 야자수를 둥글게 도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오솔길을 걸을 때마다, 참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도 몇번씩 오솔길을 걸으며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나폴나폴 나르는 나비도 본다.
꿀을 먹고 사는 조그만 새, 벌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꿀을 빠는 모습도 본다.
행복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날마다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