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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사랑 34장[마지막 편]


BY 어지니 2003-11-07

[이상하게도 다음 글을 올리려니 잘 되지가 않으네요....아래의 주소로 방문하여 주실래요? 아직은 허접하지만, 정겨운 님들의 방문을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A href="http://cafe.daum.net/pobi9766">어지니 카페</a>

 

 

"기혁씨랑은 상관없이 만났더라면...좋았을텐데....그랬더라면...나경씰 아주 많이 좋아했을 거에요...난 혼자 자라서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참 많이 했었거든요..."

설희는 진심으로 아쉽고 안타까워 가슴 끝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토카스가 반쯤 남은 잔을 집어들었다.
술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소리내어 나오는 말소리가 꾸불거리고 있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맨정신일 때보다 더 깨끗해지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부터 시작해 공통점이라고 하나 없는 다른 두 여자가 가슴이 다 헐어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듣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만큼의 중요한 말이 남았다는 설희를 따라 바에 앉은 지도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잔을 내려놓는 설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이 자신의 눈에서 흘러 내리는 것처럼 나경의 눈도 따가워지고, 가슴이 아려왔다.
동변상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에 와 부질없는 감정의 소비일테지만, 누구보다도 설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희씨....지금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까지 안해도 돼요...."

속엣말을 꺼내는 그 순간....설희는 두 사람 모두를 잃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슬픔은 가슴 안을 멍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나경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이 버팅겼는데....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었다.

"그 말은 기혁씰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그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버리는 설희의 스타일은 나경은 여전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버리는 설희의 말에 제대로 된 대답 한마디 하지 못하고 얼버부리다 앞에 놓인 토카스를 입에 갖다대었다.

윽! 이건 정말 술이 아니라 휘발유 같애...으......

속을 다 헤집어 놓는 독한 토카스의 기운을 여린 숨소리를 내는 것으로 뿜어내면서 나경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잊어질거에요..."

"잊어지겠죠가 아니라 잊어질거예요 군요....기혁씨가 여자 좋아하는 건 알죠?"

알다뿐이겠니....나랑 대화하다가도 다른 여자랑 일대일 대화를 하고...내가 버젓이 들어가 있는데도 다른 방을 만들어 대화하는 사람인데....

"그런데도...그 사람 가슴에 들어앉은 나경씰 치워낼 수가 없었어요....아무리 발버둥을 쳐도....아무리 애원을 하고, 달라붙어도....그럴 수가 없었어요...그 사람한텐 나경씨 뿐이에요."

그런게 지금에 와 무슨 소용있어....다 부질 없는 것을....

"그 사람 옷이 벗겨져 있었던 거....그리고, 내가 벗고 있는 것이 궁금하죠?'

"그만해요!"

나경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뻔한 이야기 인것을!

"이제 그만해도 돼요....제발 이제 그만해요...그렇게 난도질 하지 안하도 내 가슴은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져 있다구요."

나경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추스리면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전에 돌아서야 했다.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

"기사 불러달라고 할테니....조심해서 잘 가요."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것은 설희 역시 바라는 일일것 같아 말기로 했다.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이었다구! 그 날 밤 우린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이 없었다구?????

40도의 독한 술을 마신 것 이상으로 그녀의 가슴에 회오리를 일게 하는 말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꽂혀버리기라도 한듯이 작은 움직임하나 없이 서 있는 나경에게 설희는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기로 했다.

"술에 잔뜩 쩔어서 날 나경씬 줄 알고 껴안드군요....처음엔 그렇게라도 그의 여자가 되버릴까 생각하고, 옷을 죄다 벗었어....근데, 계속해서 나경씨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어. 초라하고, 비참했지......육체만 맺어진들 무슨 소용있겠어. 그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을.."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기혁씬 내가 정말 자기랑 무슨 일이 있었는줄 알아요...지금까지도..."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이던 설희가 말을 뱅뱅 돌리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말했다.
돌리지 말고 바로 말해달라고.

"그런데도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다시 옷을 벗었어...모든 것을 체념하고 날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희씨, 잠깐....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지금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모르겠다니....멍청하군요. 그 남자, 장 기혁이라는 남자 앞에서 다시 옷을 벗었다구요..처음 생각과는 달리....껍데기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완전히 나경씨랑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체념하는 마음으로라도 날 받아줄거라고 생각했죠...근데...근데...아니드라구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center><b><font color=green>      [기혁의 항변]</font></b></center>


보고 있는대로라구???

두컵의 물을 마시고 헛기침을 달아 하면서 말을 쉬이 이을 수가 없었다.
기혁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을 떠올리려는 듯 눈쌀을 찌푸리며 머리통을 쥐어뜯어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아무리 머리통을 주먹으로 쥐어박아도,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저편으로 잘려나가버린 내 기억을 돌리도고~~

"생각나지 않겠지...술을 그렇게 퍼마셨는데 생각이 날리가 있겠어."

부정의 뜻으로 기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난 상관없어. 기혁씨 가슴에 안긴 것은 나경이라는 여자가 아니라, 나니까 말야."

그 순간이었다.
설희도 상상하지도 않았고, 기혁..자신조차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짓이야!"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어 벽에 머리를 찧기 시작하는 그를 말려보았지만, 남자의 힘에 떠밀려 설희는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그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새어나기 시작했지만, 머리를 찧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있었다.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어떠한 말도 없이 자신을 아작낼 작정으로 벽에다 머리를 찧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없이 자신을 죽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설희는 피투성인 채로 이를 악물고 있는 남자앞에서 옷을 벗어내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교해 어느 하나 나을 것이 없는 여자에게 빗겨진다는 것에 저도 모를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모든 것이 해결해 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미안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피투성인 얼굴을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혁은 미안하다고 했다.
나신으로 서 있는 설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설희야....난 아무래도 안돼....널 다시 안을 수가 없다...미안하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이제 그도 별수없이 자신을 받아줄거라는 생각했던 것은 헛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만 포기할때도 되지 않았어? 어차피 그 여자랑은 이제 끝나버린거야. 이지경에까지 왔는데 그여자가 기혁씰 받아줄 것 같아? 그리고, 내가 기혁씰 놓아줄거같냐구!"

피로 얼룩진 이마를 감싸면서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목메인 음성으로 미안하다고만 하는 기혁앞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그렇게도 나는 안되는거야? 이렇게까지 해두 말야...."

'미안하다..."

절망스러운 어조가 두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center><b><font color=green>      [다시 설희의 절망속으로]</font></b></center>


"그, 그러니까....뭐에요? 사실은 기혁씨랑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에요?"

"이제야 말기를 알아들었나보네요....그래요. 기혁씨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비참하지만 말이에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왜 그 말을 해주는 거죠? 기혁씨가 지금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기혁씨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왜죠?"

"정신을 차린거죠....껍데기랑은 한평생 살아가기엔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그 남자 가슴에는 언제까지나 나경씨 뿐일텐데....그걸 알면서...내가 얼마나 기다릴 수 있겠어요. 난 그다지 참을성이 없거든요. 두사람처럼 줄다리기식 사랑은 내 체질에 맞지 않아요...김 나경씨."

회오리가 몰아친다 해도 이렇듯 몸을 가누지 못할 것인가.
비틀거리는 몸을 의자 등받이를 잡는 것으로 간신히 버티고 선 나경은 머리가 하얀 백지상태가 되버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가슴은 먹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먹먹해졌다.

"아무리 가지려 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사랑을 하는 내게 조금이라도 미안하다면....이제 그만해요. 그 줄다리기식 사랑.....아직도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에요....결혼할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난 아마도 평생 기혁씰 잊지 못할 거에요."

설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할지 고민스러웠다.

"지겹네요. 정말 뛸듯이 기뻐할거라고 생각했는데...그런 표정이라니...정말 웃기지도 않네요."

"설희씨....난 정말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어떨지를 모르겠어요...왜 내게 그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왜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시간이 남아 돌아가서 나경씨를 붙잡고 이런 말 한다고 생각해요? 기혁씨 이제는 울게 하지 말아요....이건 부탁도 아니고 애원도 아니에요.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남자 더 이상 울게하지마요.."

설희는 그말을 끝으로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술을 많이 마신 까닭도 있었지만, 속엣것을 다 드러내고 난 후의 설희는 백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기진맥진 상태가 되버린 것이었다.


"뭐야? 너 제정신이야? 이 여자를 어디까지 데려오는거야? 재수없게!"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오긴 했지만, 설희를 제 방으로 들여 뉘이고 있는 나경을 향해 정민은 마치 바퀴벌레라도 맨발로 밟은 사람처럼 질색팔색을 하면서 대뜸 소리부터 질러대었다.

"고마워요...영훈씨....두 사람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마침 집에 데려다 줄려고 했던 참이었는데요...."

"야! 너 정말...속에 뭐가 들은 거야?"

"그런게 아냐."

"그런게 아니긴 개뿔이 그런게 아냐. 나도 다 알아. 니가 무슨 천사라고 이짓꺼리를 해. 당장에 기혁인가 뭔가 하는 인간한테 전화해 데리고 가라구 그래. 아니면 니가 이 년 데리고 나가든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얘가 얘가 정말...."

정민을 이해시킬 말은 단 한가지...[그날 밤 아무일도 없었데] 라고만 하면 되었지만.그말을 소리내어 말하기가 설희에게 너무 미안했다.
잠들어 아무것도 듣지 못할 설희였지만...마지막 사랑에 대한 그녀의 의리라고나 할까.
여하여튼 나경은 아무 말 않기로 했다.

발을 동동 굴리며 못 견뎌하는 정민은 영훈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가고, 새근새근 잠들어버린 설희와 나경이 남았다.


 <center><b><font color=red>우리 사랑 만년이 지난 후에도....</font></b></center>


"음..."

새벽녘에 타오르는 갈증을 호소하는 설흐의 신음소리에 나경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꿀물을 내밀었다.

"마셔요...속이 좀 편해질 거에요."

얼음까지 띄워 준비해준 꿀물을 단숨에 들이키고서야 갈겨지는 속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해요?....내가 아무 말 없다고 한 거 못 믿겠다는 거에요?"

"설희씨가 없는 말을 만들어낼 사람은 아니니....믿어요."

"근데, 왜 여기 있냐구요?"

그녀 자신도 꿈처럼 바래왔던 진실을 알은 그 순간....한달음에 기혁에게로 달려가 그의 품에 앵겨들고 싶었다.
아무 일이 없기를 얼마나 바래왔던가.
마치 꿈인 것 같은 일이 현실이 되버린 것을 그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술에 취한 설희씬 어떡하구요?"

"정말 못 말린다니까....내 걱정을 하다니....."

설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더 자요..."

나경은 설희의 목젓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퇴근을 해야했지만, 나경은 좀체로 정리되지 않는 생각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녀앞으로 어느 틈엔가 정민이 준비한 커피가 놓여져 있었다.

코끝으로 뿐만이 아니라, 혀끝으로도 느낄 수 있는 향 가득한 헤즐넷이었지만....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집에 안 갈거야?"

"먼저 가...영훈씨 만나기로 했다믄서...'

"널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잘못된 생각이었어..."

진저리쳐지도록 집착과 미련을 보이는 나경에게 포기라는 것은 없는 듯이 보였다.
정민이 나가고, 할일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잇던 나경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김 나경씨...저, 설희에요."

반갑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그녀의 말대로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기혁과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대신...설희에게는 서글픈 사랑이 멍에처럼 지워지게 될 것이다.
그녀의 사랑이 다만 세월 속에 묻혀 무뎌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지금쯤이면 퇴근했을 시간이네요?"

"생리가 터졌어요. 배도 아프고, 오늘은 무지 피곤해요."

만나자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먼저 선수를 치고 있었다.

"여전히 난 달갑지 않은 사람이군요...그럴테죠...나도 그러니까.....근데, 어쩌죠?  꼭 주고 싶은게 있는데....아무 그거 안받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텐데요? 분명히 말하는데, 틀림없이 후회할거에요,'

듣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거라던 그녀가 이번에도 후회할 거라는 맨트를 달고 그녀와 만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설희는 그러마라고 말하지 않는 나경에게 장소와 시간을 말하고는 폰을 내려놓았다.
폰을 내려놓자마자 설희의 눈에서  뚝하고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설희는 화장실 벽에 기대어서서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훅하고 숨을 몰아쉰 설희는 울었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가방을 열어 콤팩트로 얼굴을 문지르고, 립스틱을 다시 발랐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식사는 했어?"

"응...."

"거짓말...하긴 뭘 했겠어...나와....생일은 아니지만, 내가 근사한 선물을 준비했어."

"나가고 싶지 않아."

"면도도 하고...깔끔하게 하구 나와.구릿내 풍기지 말고...."

"됐어...."

"밥 한끼 같이 먹어주는 것도 이렇게 부탁에 애걸까지 해야 해? 나한테 조금이라도 인정있게 좀 굴어주면 좋겠어."

새된 설희의 음성이 조금은 슬프게 들려와 기혁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기혁을 보았지만, 설희는 자신의 위치를 말하지 않고,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립고, 그리운 사람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는 시간도 여기서 끝일 것이니....

카페안을 두리번거리던 기혁이 점점 거리를 좁혀와 그녀와 마주 앉았다.

"면도라도 좀 하고 나오지....."

이마의 상처를 모자로 가린 그의 얼굴에 거뭇한 수염으로 뒤덮혀 있었다.
삶의 의욕까지 놓아버린 사람처럼 표정이라곤 없이 창백한 기혁의 얼굴에 설희의 가슴은 무너지고 있었다.
기혁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이 다른 여자가 아니고, 자신이었으면 하는 허망한 바램이 밀려와 헉하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 인상좀 펴주면 안돼?"

기혁은 말없이 앞에 놓여진 컵을 들어 단숨에 겁을 비웠다.

"이거....."

그것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랑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열어봐. 열어서 내용을 확인해봐..."

"누구랑 똑같다니? 나경일 만난거야? 그러지 마라.....그러지 마...."

"긴 말하고 싶지 않아....나도 피곤해....얼릉 봐봐."

기혁은 청첩장으로 보이는 봉투를 쥐고서도 한참을 뜸을 들이고 있었다.
이미 끝이란 것은 그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체 쉽지 않앗다.

이럴 줄 알았으면.....더 많이 사랑해줄걸.....가슴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미치도록 사랑해버릴 걸...나경아....오래 오래 살아라....시간이 많이 많이 지난 후...아주 우연이라도 널 다시 만날 수 있게...오래 오래 살아라....천년이 지나고, 만년이 지난다 해도...내 가슴엔 너 하나뿐이다....

그녀가 말했었지....
[기혁씨를 생각하면 난 항상 목이 말라....]

그때 그녀의 심정이 되어 기혁은 목이 말랐다.
요즘들어 과거 그녀가 처했던 상황에 접하게 되면서....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이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떠올라 가슴을 짓눌렀다.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지 몰라....나경씨도 쉽사리 그걸 보지 못하드라구...."

반복되어 나오는 나경의 이름에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듯이 봉투를 열었다.
여지없이 나경과 똑같은 반응으로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해 하는 기혁에게 말했다.

"소망하던 거 아냐?"

"이래선 안돼."

"안되다니? 뜻밖인데?"

"너....어쩌려구 이래? 내 행동에 책임은 진다고 했지. 그런데...."

"책임이라....책임질 행동이나 했어?"

"그래...술에 너무 취해 기억은 나지 않지만...어쨌든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진다."

"평생 가슴엔 다른 여자를 품고서 말이지? 날 껴안을때마다 나경씰 떠올리겠지? 책임이란 말을 아무렇게나 쓰지마...그리고...기혁씨 기억이 나지 않는게 아니라...사실은....책임질 행동을 하지도 않았어."

"무슨 말이야?"

"했던 말 또 해야 해? 그런 일 없었다구...다 내 쇼였어...."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애?"

"산부인과에 가서 처녀막 검사라도 해서 확인해야 믿겠어?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언제까지나 헛돌면서 기다리면서 하는 사랑은 내 스타일 아냐."

기혁은 설희의 하는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엇다.
아무리 끄집어내려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한 컷때문에 얼마나 머리를 쥐어뜯었던가.
피가 나도록 벽에 머리를 박아도 떠오르지 않았던 그 일이...애초에 없었던 일이라니???
꿈이길 간절히...너무나 간절히 원하긴 했었고, 그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건만...기혁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게 갑작스럽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일의 연속에 기혁은 눈을 감아 설희의 말을 되집어 보고 있었다.

아무 일이 없었다?
아무 일이 없었어???

"여기요!"

그때 설희가 손을 들어 말하고 있었다.

여기요!

소리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기혁은 눈을 감은 채 있었다.

"설희씨...이게..."

나경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기혁은 눈을 떴다.

"앉아요....일어나 의자까지 빼줘야 하는거에요?"

나경은 기혁을 마주보고 앉았다.

"설희, 너..."

"근사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지. 어때? 맘에 들어? 큰 리본이라도 달고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장난스럽게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자, 여기까지야....그만 가볼께....짬 나면 내 결혼식에 와줘...그리고, 새벽에 마신 꿀물의 댓가로 식사를 준비해뒀어요...맛있게 먹어요...그리고, 두 사람 괴롭혀서 미안해."

마지막 인사인듯 잘 있어 하는 그 말에 한없는 슬픔이 베어있었다.

기혁은 서둘러 옷을 챙겨입었고, 돌아서가는 플라워의 마중은 나경이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만 기혁씨 울게 해요. 그땐....정말 무슨 수를 썼서라도 내 남자로 만들어버릴테니까."

 으름장을 놓으면서 돌아서는 플라워의 뒷모습이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두사람은 마치 나선형의 계단을 맨발로 질주한 듯 지쳐 있었다.

"내 옆에 올래?"

그가 한참만에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경은 그 옆에 다가가 앉았다.

기혁은 바로 옆자리에서 숨소리조차 안으로 삭이고 있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에 닿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를 그렇게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는 감동에 사로잡힌 그의 눈에서 예상치도 않은 눈물이 떨어졌다.

"기혁씨...."

"널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널 사랑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널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슬프고, 절망하면서...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그때서야 알게 된거야....내가 그렇게 어리석다..."

나도 그랬어요....다시는 기혁씰 보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고, 나도 슬펐고, 절망했었어요.

그간 삼켰던 눈물의 양으로는 작은 호수를 이루고도 남았다.

그에게 저 말을 들으려고, 그의 마음을 얻을려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던가....
 
  이제 더 이상 같은 사람에게 수많은 이별을 고하면서 슬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은 묻어둔 엣날을 들추어 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도무지 아무래도 이사람에게서 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왜냐면...왜냐면, 난 이사람을 너무 사랑하니까..매시간 시간마다 별 일도 아닌 것에 다툴 것이 뻔하겠지만, 난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

 연한 보라계열의 입술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기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나경의 입술을 맛난 음식을 음미하듯 해주는 키스는 지금껏 해왔던 키스보다 부드러웠고, 섬세했다.

 “널 사랑해.“

 

{한 글을 보아주신 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늘 언제나 그러하듯이 끝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여러번의 수정을 거쳤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네요.
다음에 준비해 올릴때는 조금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글이 되길 저 자신에게 바래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늘은 어제보다 배로 더 많이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