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52

절대사랑 12장


BY 어지니 2003-06-23

"감기도 다 낫지 않았으면서 어디를 간다는 거니? 박 서방 만나기로 한 거야?"

 처음엔 가족의 일원이란 의미로 자연스럽게 박 서방이란 호칭을 소리내던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딸아이의 가슴에 일고 있는 바람을 감지하고는 딸아이의 마음을 잡아주기 위한 방편으로 의도적으로 박 서방이란 호칭을 쓰고 있었다.

 "그냥...잠깐만 나갔다 올게...방안에만 있으니까..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애..."

 이미 방을 나올 때부터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은 딸아이가 하는 잠깐 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는 거야?...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할 것 없이...요즘 젊은 것들 이란...쯧쯧..."

 보통 때 같았으면, 어머니의 그런 티박을 들은 나경은 틀림없이 코멩멩이 소리를 내면서 가슴안으로 앵겨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출장으로 고작해야 3일째 연락되지 않았을 뿐인 기혁에 대한 그리움에, 보고픔에 이미 이성이 이탈 되어버려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어머니의 그런 다그침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잠깐이라고 말한 나경은 제어 불가상태로 치닫고 있는 그리움이 이끄는 대로 택시에 올라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 가십니까..."

 "저...김해 주공 아파트로 가주세요."

 경쾌한 어조로 어디로 가냐고 묻는 기사의 물음에 나경은 기혁에게 가는 길이 아주 당연한 길이고, 아주 당연한 처사인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버린 나경은 기혁에게로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를 실제로 만난 것 이상으로  흥분되어 작은 가슴은 쿵당쿵당 뛰다못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목적지까지 제대로 갈 수가 없는데요, 손님....김해 주공 아파트가 해운대 신시가지 못지 않게 넓습니다. 그리고, 외동과 내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그렇게 말씀하시면..."

 거기를 어디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

 늘 밋밋함에 젖어있던 나경으로서는 새로운 감정의 돌발지점에 다다르게 한 기혁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골똘히..아주 골똘히 생각에 잠겨들어 기억을 더듬었다.

 주공 아파트라고 했었는데....

 "주공 아파트라는 것 밖에 모르는데...잠깐만 요..."

 갑자기 나타나 그를 놀래켜 주려 했던 생각을 고쳐 먹은 나경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음성으로 바로 넘어가고 있을 뿐,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였습니까?"

 보다 못한 기사가 물어봐 주었다.

 "아니요...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새로 지은 아파트는 아니었어요."

 "그러면 외동인 것 같은데...."

 "도착해서 전화하면...친구가 나와줄 거예요...일단, 외동으로 가주세요."

 그에게 가는 길이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았다.
지금의 이 상태라면, 그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나경은 기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의 얼굴...언제 어느 때고 바꿔버릴 수 있는 핸드폰 번호와 차 넘버...그리고, 기억에도 아련한 아파트 위치뿐이었다.

 "아저씨! 외동이 맞아요. 저기 교회도 그렇고..이 길이 기억나요!"

 얼굴 표정이 저도 모르게 굳어지던 나경은 기억 속에 있던 길모퉁이를 발견하고는 그제서야 비로소 미소지을 수 있었다.

 길을 나서기 전 위치 정도는 기본인 것을 .. 대단한 거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한 톤 높여 말하는 기사가 다행스럽다는 듯이 하하하 웃어주었다.

 "덕분에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됐어요....감사합니다, 아저씨."

 깍듯하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택시에서 내린 나경은 가슴 벅참을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몇 동, 몇 호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나경의 앞으로 같은 모양, 같은 색으로 쭉쭉 위로 치솟은 아파트가 떠억 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맹했나...

핸드폰은 계속해서 음성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출장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일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주면 좋을 텐데...저 여기..김해 와 있거든요...근데, 나 지금 기혁씨 아파트를 찾을 수가 없어 헤매고 있어요. 바보같죠? 음성 듣는 대로 바로 전화해줘요."

 가도 가도 길은 보이지 않고, 첩첩산중이었다.

 나경은 핸드폰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 1동부터 차근차근 기억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그의 아파트 찾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잘 보고 다녀야지.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쳐들고 아파트를 쳐다보면서 걷던 나경은 앞서 걸어오는 두 남자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 중 한 남자의 팔뚝에 머리를 부딪쳤다.

 "어두우면 그럴 수도 있지. 야, 바뻐~ 얼른 가자."

 그들이 시비를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고맙게도 옆에 선 남자가 중재역할을 해주면서 뻣뻣하게 굳어있던 나경의 신경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아? 저긴...우와!! 찾았다, 찾았어!!

 나경은 4동에 다다랐을 때, 너무나 좋아서 꽥꽥 고함이라도 지르면서 펄쩍 펄쩍 뛰어 오르고 싶었다.

 그의 아파트를 찾은 것이다.
그의 아파트 앞에 있는 커다란 화원....그 화원을 보면서 그가 말했었다.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난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 슬프고, 쓰라린 사람의 마음을 단 한마디의 말없이도 위로해 줄 수 있잖아...하하하.

 하하하~ 하고 웃던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지.
어떻게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말야....그리곤, 난 정말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

 "기혁씨...출장 다녀온 오늘도 야근하는 거예요? 그 회사 정말 너무한다....일할 때 폰 꺼놓는 건 여전하네. 지금쯤 핸드폰 들어 내 목소리를 들으면 좋으련만....충전이 다 되어가요.. 지금 기혁씨 아파트 앞 이예요. 빨리 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