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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사랑 3장


BY 어지니 2003-06-23

 


                        <center> [추억 속으로...하이트 데이]</center>

 하이트데이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승규는 껌조차 씹지 않는 아주 깔끔한...그래서, 남들로 하여금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다는 인상을 주는...조금은 부담스러운 스타일이었다.

 그런 승규와의 만남은 우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띠용하는 운명같은 필연으로 다가선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때부터 RCY 활동을 했었던 그녀와 RCY 회장이었던 승규와의 만남은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버렸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계였다.

 딱히 서로 만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승규의 만남이 잦아졌고, 결혼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나경은 획일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초콜렛 대신에 낱개로 사들인 초콜렛을 일일이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기혁이 떠올랐다.
지난 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사랑하지만, 사업 실패로 인해 그 사랑을 지킬 수 없었던 자신을 탓하며 은둔생활을 했었다는 그에게도 초콜렛을 보내고 싶었다.

 <이내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될 거예요. 틀림없이...그전의 사랑은 더 깊고, 넓은 사랑을 위한 연습이었다고 생각해요....그때까지 내가 친구해줄께요..친구가 친구에게 초콜렛을 보냅니다.>

 자신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혼자라는 정막감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면서, 기혁에게 메일을 보냈다.

 처음, 그로부터 받은 메일은 나경에게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글쓰는 재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늘 곁에서 지켜봐주는 듯한...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에이고 마는...
 기혁을 대할 때면, 그렇게 생소하고 낯선 기분에 젖어들곤 했었다.

 "경아, 밥 먹자!"

 "네, 엄마!"

 뭘 하는 걸까, 그 사람? 오늘은 다른 일을 보고 있는 건가?

 언제나 늘 찾아주던 기혁으로 부터 연락이 없다.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에 컴의 전원도 내리지 못하고, 식탁에 앉은 나경은 수저를 들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온통 기혁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사람...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다고 했어. 사랑했지만, 여자의 행복을 위해서 보내주었다고 했었지...그래서, 지금은 혼자라고...식사는 제대로 하나 몰라... 

 "반지는 언제 하러 가기로 했니?"

 "어? 무슨 반지? 아, 뭐...승규씨 시간 나는대로.."

 그래, 참...난 결혼할 사람이지...왜 내가 그 사람을 걱정하는 거야? 한 두 살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서른 한 살이나 먹은 남자를...

 "왜 그거 먹고 말아?...너 커피 좀 줄여야 하지 않니? 요즘들어 더 마시는 것 같다."

 "그래야지...생각은 하는데...잘 안되네..."

 머그컵 가득 커피를 담은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선 나경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초콜렛을 잘 받았다며 장미꽃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은근히 귀여운 데가 있는 남자야....

 그리고, 그 다음날 <내 심장 이쁘죠?...> 이라는 짧은 메일이 도착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잘 안보이는데...사람아, 나 천리안 아니네..,

 나경은 메일로 전해진 글귀를 손끝으로 어루만져보았다.

 <안녕.>

 짧은 그의 메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앞으로 늘 같은 인사말을 하는 그가 나타났다.

 <안녕...>

 <초콜렛 고맙게 잘 받았어요, 내가 메일 보냈는데, 봤어요?>

 <봤어요...>

 <빨갛고 조그만 심장이 이쁘지 않았어요?>

 <빨갛고 조그맣다구요? 그냥 심장이라는 말만 있던데요...>

 아하, 이 여자, 컴에 대해서는 아주 왕초보라고 했었지. 뭐라고 설명을 해야하나.
 
 <천리안 2000 CD 아직 안 받았어요?>

 <받아서 깔기는 했는데..>

 <그런데도 안 떠요?>

 <전 새롬을 쓰고 있어요. 2000은 너무 늦게 뜨잖아요.>

 이 여자, 성격이 급한 편이로군.

 <근데 안 뜨다뇨? 뭐가요?>

 <좀 늦게 뜨긴 하지만, 천리안 2000은 인터넷과도 연결되어 다른 자료찾기도 손쉽고..이것저것 쓰기가 좋을텐데...그럼, 내가 보낸 꽃도 보지 못했겠네요?>

 <천리안 2000으로 하면 그림이 뜬다는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죠? 보고 싶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올린 그녀와는 잠시 단절이 되었고, 잠시후 오우!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녀가 컴안으로 들어왔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고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는 여자의 모습이 머리속으로 떠올려졌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지 순간, 기혁의 머리속으로도 그려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채팅상으로 그가 먼저 목소리를 듣고 싶다던가, 보고 싶다던가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는 기혁은 상대방 여자가 먼저 그런 제의를 해올 때면 어이없고, 순간 황당함으로 허허..웃곤 했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기혁의 글에 놀란 나경은 키보드를 바쁘게 돌아다니던 열 손가락을 떼어내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머리속으로 그려지는 사건 25시...그가 너무 가깝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 그러잖아도 불안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절레절레...에티켓이 꽝이로군요.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묻기 전에  자신의 번호를 먼저 말해주어야죠.>

 오, 이 뛰어난 순발력. 아냐, 이건 순발력의 차원을 떠나 재치라고 할 수 있지. 룰룰랄라..

 그렇게 먼저 선수를 치면 전화번호를 묻는 곤란한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나경의 생각이었지만, 기혁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핸드폰 번호를 올려놓았다.

 끙....^^;;

 장난스럽게 나경은 핸드폰을 집어들었고, 화면상에 뜬 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장 기혁입니다."

 정겨운 목소리였다.
글에 비한다면, 그와는 처음 시도하는 직접적인 접촉이었지만, 낯설지 않은 정겨운 목소리였다.
 정교하다거나, 곧은 느낌과는 다른...조금은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경은 물안개를 떠올렸다.
 새벽 물안개....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를 처음 보았을때...무엇엔가 끌리듯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었다.
 그리고, 안개밖으로 나왔을때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목소리가 참 정겨우시네요.>

 <음...말없이 끊은 전화의 장본인이 나경씨였군요.>

 기혁은 그녀의 장난기가 밉지 않았다.

 <이제 나경씨 전화번호도 일러줄 차례네요.>

 <다음예요......>

 나경은 화제를 다른 쪽으로 유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뜬금없이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화면상으로 올렸다.

 그녀가 그럴수록 기혁은 집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과 느낌이 통한다는 것...
 그녀는 쳇상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과는 다른...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느끼는...설레이는 감정이었다.
인영을 떠나보내고 난 후, 그런 설레임은 잊고 살았었다.
인영을 떠나보내고 난 후, 그런 설레임은 다시 없을 줄로만 알았었다.

 <설마..내가 다른 쪽으로 이용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불안한 거로군요.>

 그녀는 집요하게 물어오는 그를 피해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던 나경은 그의 유도심문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기혁씨랑 대화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걸 믿게 해줘봐요.>

 잠시 머뭇거리던 나경은 화면상으로 핸드폰 번호를 띄워주었다.

 채팅에 의해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건들이 심심찮게 매스컴 상으로 보도되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녀에게는 기혁이란 남자에 대한 믿음의 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한 치앞을 확인할 수 없는 물안개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물안개처럼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는...막연하지만, 기혁이란 남자에겐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나경의 신경은 핸드폰 쪽으로 날카롭게 쏠려있었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핸드폰과 모니터를 번갈아 쳐다보던 나경은 기다리고 있던 시간에서 벗어나자, 조금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화면상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따르릉...
핸드폰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승규밖에 없었다.
 이제는 한 사람 더 있지만....

 "여보세요?"

 "목소리가 아주 이쁘네요. 섹시하기도 하구..."

 가슴 철렁.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기혁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나경은 모니터 화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든 해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나경은 핸드폰을 든 채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상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데요."

 그의 말대로 틀림없이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위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경은 자꾸만 화면안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여자가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런 거야. 내숭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