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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이야기(경릉)


BY 세번다 2020-05-29

왕릉이야기하다가 날라갔다
글이 한번 날라갔는데
뭐 임시저장도 안된듯하다
왕릉이야기(경릉)동구릉의 경릉
삼연릉의 유일한 형식 왕릉이다
헌종과 두왕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릉이 쪼르륵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우리가 아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
효명세자는 얼마전 나왔던 드라마 구름에달가듯이
박보검이 연기했던 그 세자의 실제 모델이다
효명세자가 살아있었다면 조선조 후기 역사가 달라졌을것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두왕비외에 너무나 사랑받았던 후궁 경빈김씨를 위해서 창덕궁의 낙선재가 지어졌다고 하니 로맨티스트였나보다용모가 무척 아름다웠던 왕이여서일지
후궁경빈김씨에 대한 일화는  원래 왕비간택으로 해서 나왔던 여인이지만 왕이 마음에 들어했던 여인지만 정해진 왕비는 가문의 입김으로 되었던 바라 후궁으로라도 입궁시키고 사랑을 주었던 여인이지만 왕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 여인도 박복한 여인이기는 하다
그러고보니 낙선재도 가본지 참 오래되었다
참 아름다운곳인데왕릉이야기(경릉)(백과사전 발췌내용)
헌종은 1827년(순조 27) 7월 18일에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와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조의 손자로, 효명세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순조의 뒤를 이어 1834년(순조 34)에 즉위했다. 이때 헌종의 나이 불과 8세였다. 이름은 환(奐), 자는 문응(文應)이다.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탓에 헌종은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비) 김씨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이어 1837년(현종 3)에는 안동 김씨인 김조근의 딸 효현왕후(孝顯王后)를 왕비로 맞이했다.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가 계속해서 이어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순조는 죽기 전에 헌종의 외삼촌인 조인영(趙寅永)에게 헌종의 보도를 부탁했고, 풍양 조씨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헌종이 14세가 되던 1840년(헌종 6)에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면서 풍양 조씨의 본격적인 세도가 시작되었다. 조만영의 아들이자 신정왕후의 오빠인 조병구, 조득영(趙得永)의 아들 조병현(趙秉鉉) 등이 조인영과 함께 헌종 시대의 세도정치를 이끌었다.
헌종은 효현왕후 김씨가 1843년(헌종 9)에 죽자 이듬해 홍재룡(洪在龍)의 딸 효정왕후(孝定王后)를 계비로 맞이했다. 이 밖에 두 명의 후궁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후사를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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