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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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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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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원수를 갚으리라 울면서 다짐했던 말


BY 행운 2020-05-04

그녀는 직장에 다니고 학교를 다니면 그래도 조금은 부모님께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조금은 기대를 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직장가서 야간까지 하면서 받은 첫 월급은 7,940원 그녀는 그 돈을 어떻게
해야 저금도 하면서 보고픈 책도 사 볼 수 있을까 또 학교도 다녀야 했어니까 그녀는 처음에는 돈을 모우려고 해도 모울 수가 없었단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하고 여러가지 생각보다
쓰이는 면이 많았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기숙사에 들어 갔단다. 물론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직장에 다니다 처음 집에  갈때 부모님 내의도 사고 동생들 것도 ,그리고 부모님  용돈을 드리는데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10만원 드렸는데 받으시면서 고맙다고 말하기 보다 돈 적게 줄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얼마나 피가 날 만큼 아끼고 모아 드리는 돈인데 하는 ,,,,가슴이 젖어드는 듯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중학교 다닐때 다리를 다쳤는데도 병원 한번 데리고 가지 않아 그것으로 하여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며 그토록 아파도 제대로 병원도 다니지 않고 모운 돈인데 주 야간을 하면서 하루에 회사에서 주는 밥 한끼로 배를 채우며 해결하고 한끼는 언제나 큰 대접에 건빵 7개를 찬물에 불려 먹는것이 아니라 그냥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배가 고파 먹긴 하지만 아무 맛도 없었다고 했다. 그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먹어야 했었단다. 그리고 언제나 한끼는 굶었단다. 그렇게 돈을 모아 용돈을 드리고 ,,,,, 한것인데 .....다른 친구들은 월급타면 먹고 싶은 것 사 먹고 그것도 부족해 외상까지 하면서 소비하고  집에 가도 고구마 떡 군것질 거리를 가져와 방 식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편한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고향에 가도 부모님이 썩어 버리는 고구마 하나도 삶아 가라고 말하지도 않고 삶아 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집에 가면 쉬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일만 하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기숙사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방 식구들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항상 혼자만 빈 손으로 돌아오다 보니 ,,,,, 처음에는 방 식구들이 고향가서 가져온 간식을 몇번 같이 먹다가 이후부터는 누군가 집에 갔다 와서 방 식구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고구마, 떡, 여러가지 내 놓으면 그녀는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고는 기숙사 옥상으로 올라가 계단 그늘진 곳에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다가 방 식구들이 간식을 다 먹었겠다 싶으면 옥상에서 내려와 방으로 갔다고 한다. 학교도 다니고 있을 때니까 숙제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했었다고 한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기말고사라도 칠 때면 최소한 엠블런스 3대는 대기하고 있었단다. 학생들이 공부한다고 잠을 못자고 야간한다고 잠을 못자고 해서 정작 시험 당일날 쓰러지는 학생들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모두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스스로 찾아온 학생들이기에 그만큼 경쟁심도 심했다고 했다. 시험때면 기숙사 사감들도 비상이었단다. 행여 잠을 안자고 공부할까봐 일찍 자라고 불을 다 꺼버리고 회전을 돌며 빨리 자라는 말을 되풀이 했단다. 복도와 화장실 불만 켜져 있어 그녀는 화장실 안에서 밤새 쪼그리고 앉아 공부를 하고 새벽에 나오려니 다리가 굳어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그녀는 공부 욕심이 누구 보다 많았다며 언제나 반에 반장과 보이지 않는 경쟁심으로 불탔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녀에게 공부 벌레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단다.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간혹 친구를 만나면 자신을 별명으로 부른단다.그리고 학생들이  사회 초년생으로 부임한 선생님 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많았기에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는 이들은 선생님이 결혼할 때 친구 들러리로 가는 학생들도 있었단다.  그녀에게는 그런 여유의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돈을 모아야 했기에 ,,, 그녀는 돈을 모우리라 돈에 원수를 갚으리라 언제나 마음으로 다짐을 했었다고 했다. 부모님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자신은 어쩌다 태어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수도 없고 자신은 뭔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또 그녀 자신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일까 ,,,,,,,자신의 내면에 수없는 물음과 찾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답을 찾으려 애쓰곤 했단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 공부가 되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을 마치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잡으려는 마음처럼 헤메이기도 했었단다.
옳은 삶이 무었이고 어떤 것인지 ,,,,,,,,그녀는 돈을 아무리 모우려고 악을 쓰고 쓰도 돈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언제나 바람에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것처럼 느껴 졌다고 했다. 돈을 아무리 모아도 쓸 사람은 따로 있었단다. 그래서 아예 직장에서 월급을 적금으로 떼고 나오게 했었고 남은 돈을 월급으로 받았는데 받은 월급이 1,450원 이었단다 . 그런데 그녀의 월급이 그렇게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월급봉투에 14,500원을 넣어 두고는 돈이 부족하다며  "과" 에서 전체 월급을 타 온 주임과 반장이 월급 봉투마다 두-세번씩 내어 헤아려 보고 하다가 그녀의 월급 봉투에 많은 돈을 넣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반장에게 주임이 묻더란다. 그녀가 이 돈으로 어찌 사냐고,,,, 반장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그 돈으로 충분히 한달을 버틴다고 했단다. 그녀는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며 힘들어도 돈을 모울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용돈 300원을 두고 보너스와 나머지 돈을 고향갈 때 사용하려고 따로 모았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기에 초등학교 선생이 꿈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녀는 어린 아이를 보면 정말 예쁘고 한송이 꽃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했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님을 담지 않고 언제나 정 반대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베풀고 나누기도 좋아하면서,,,,, 이젠 아픔도 잊을만 하건만 여전히 그녀는 아파하는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생들과 마음껏 웃으며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리라는 그런 꿈도 잠시 꾸는 것으로 끝났다고 했다. 적금을 타기 두달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채소 심어 먹을 밭이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녀의 집 앞에 300평 약간 넘는 밭을 팔려고 한다며 그 밭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그녀의 아버지가 말도 없이 불쑥 찾아와 밭을 사야하니 돈을 내 놓으라고 했단다. 그녀는 자신은 돈이 없으니 공장장으로 있는 큰오빠에게 돈을 달라고 하라고 하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니 오빠는 돈 없다 하시더란다.
그녀는 왜 오빠가 돈이 없어요 전세 방 얻어주고 양식도 양념까지도 제일 좋은것 갔다주잖아요그런데 왜 돈이 없어요.그녀는 목구멍으로 이 말을 아버지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음 약간 그녀는 돈을 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가시지 않을것 같아 회사에서 탄 적금을 이자라도 받을까하고 은행에 넣어 둔 것을 급하게 해약을 하여 아버지께 돈을 주면서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고 했단다. 아버지 나 시집 갈때도 아버지께 손 벌리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절대 내게 돈달라고 하지 마세요 .하며 돈을 드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더니 밭 너 앞으로 해 줄께 하셨는데,,,,,,,,, 결국 큰아들 앞으로 해 주었다고 했다. 그녀에게 그 꿈도 거창한 것이었을까 ,,,, 그녀는 계속 직장 생활을 해야 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