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이 부자 됐네
우히히. 진짜로 김장이 왔다. 큰 통으로 둘하고 작은 통이 네 개. 작은 통 두 개는 아래층으로 가고 나머지는 윗층의 우리 김치냉장고로 고고. 이런~! 이야말로 횡재로세. 정말로 횡재가 아닌가. 아직도 내가 김치를 담가서 아래층으로 보내는 건 줄만 알았더니, 생전에 김장 담그는 걸 구경만 하던 아들 내외가, 김장을 담가서 들고 왔다. 이 아니 놀라운 일인가.
깔끔하게 비닐봉지로 밀봉까지를 해서 김치통에 얌전하게 담겨져 있다. 열어보니 와아~. 제법 맛깔스러운 냄새를 풍긴다.
“오~. 맛있는 냄새가 난다.”이왕이면 좀 오~버를 했지. 아들의 기분을 생각해서 말이야.
“다행이네요. 걱정했는데.”아들이 환하게 웃는다.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어찌 제 소관이겠는가.
“우리 쟤들이랑 요 밑 식당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려구요.” 친구와 그 와이프가 있으니 엄마 아빠는 빠져 주셔야 겠다는 게지. 암. 그래야지. 오늘쯤은 당연히 빠져 주는 것이 어른답지.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어서 가라.”
이래서 올해 김장 걱정은 확실하게 끝이 난 게지. 생각할수록 좋아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음 날.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다는 채수가 적은 배추포기를 쏟아 보니, 노란 속이 제법 싱싱하다.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김장이 좀 소들했는데, 이건 버물김치로 안성맞춤일세. 겉껍질은 뗘내고 속을 손질하니, 제법 푸짐한 김치감이다. 노란 속배기가 제법 고소하다. 소금에 절이고 보니 큰 통으로 두 통은 실하겠다. ‘이런 게 더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야.’
점심을 해 먹으며 저녁을 지어 먹으며, 절이고 씻고 양념을 준비해서 버무리고 나니 9시다. 난 원래 주방과가 아니라서, 일이 빠르지 못하다. 오늘 끝을 낸 것만도 신통하다. 그런데 두 통은 되겠다던 내 짐작은 헛나갔다. 한 통도 약간은 부족하구먼. 언제나 내 짐작은 빗나간다. 치수는 귀신 곡하게 알아내지만, 양은 가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이건 틀림없는 직업병이다.
그런데 뭔가 좀 모자라는 듯 허전하다. 아항~! 채짠지가 없구먼. 내 시어머님은 김장을 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아드님이 좋아하는 채짠지를 따로 담그셨다. 무채에 속배기만 골라서 버무리는, 아드님이 기차게 좋아하는 채짠지. 그래. 영감이 좋아하니 나도 시어머님 흉내를 좀 내 보자. 그쯤 뭐, 어렵지 않지. 내일은 또 하루 종일이 걸리더라도, 영감에게 그걸 꼭 해 주고 싶다.
그 다음날. 아침을 먹고 시장으로 내 달았다. 통통하고 매끈한 무 셋을 가방에 넣으니 제법 무겁다. 버물기치에는 넣지 않았지만, 채짠지에는 굴도 넣어야지. 시어머님도 당신 아드님의 채짠지에는 반드시 굴을 넣으셨지. 어제 썼던 소금물을 재활용해서, 저녁에 절여서 아침에 건진 노란 속배기가 알맞게 절여졌다. 오늘도 점심 저녁을 지어 먹으며 머무린 째짠지는 저녁에야 끝이 났다.
김장김치가 큰 통으로 둘이고 작은 통이 둘. 버물김치가 한통이고 채짠지도 한 통이니 이만하면 올 김장은 족하다. 부족한 건 못 보는 만석이니까. 이제 새콤하게 익으면 신통한 며느님도 퍼다 주고, 예쁜 딸년도 나눠 주어야지. 그녀들의 환한 웃음이 보인다. 나는 이때쯤이면 몸살기가 돌아야 되는데, 신기하게도 거뜬하다. 왜겠어. 시방 내가 젤로 부자가 된 기분이걸랑?!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