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이리 할 일이 많은지
우울증 타도의 주간이다. 일을 만들어야겠다. 일을 하는 동안엔 우울하지 않걸랑. 허긴. 만들지 않아도 두 식구 살림에 뭐 그리 할 일이 많은지 매일이 바쁘다. 아니, 바쁠 건 없지만 쉴 새 없이 일이 생긴다. 두고두고 천천히 해도 나무랄 사람 없으니 그리해도 좋으련만. 할 일을 두고 여유부리는 성미가 아닌 게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부지런을 떨지도 못하면서 아무튼 그렇다.
가을이 왔는가 했더니, 어느 새 겨울의 초입에 와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뿌리더니, 내복을 꺼내 입어야겠다. 얇은 옷이며 반팔 옷들을 걷어 넣고 긴팔과 두꺼운 옷들을 내다 놓느라고 지난 일주일이 바빴다. 반팔 와이셔츠를 세탁을 해서 넣으려니, 긴팔도 같이 세탁을 하고 싶어졌다. 표백제를 푼 김에 모두 손을 보아야겠다는 말이지. 목이며 카우스를 솔로 박박 문질러서 마무리는 세탁기의 힘을 빌려야지.
세탁을 해서 옥상의 빨래즐에 줄을 세우니 가관이다. 무슨 대단한 직장에나 나가는 사람인양, 죽으로 헤아려도 족하겠다. 미련하고 알량한 주부의 면모를 보이는가 싶어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니나 달라. 주일예배에 나갔더니, 이웃에 사는 권사님이 다가와서 한 마디 한다.
“무슨 흰 옷을 그렇게 많이 빨아 널었어요?”흉인가 싶어서 나는 그저 웃고 만다.
얇게 덮었던 이부자리도 이제는 손질을 해서 넣어 두어야겠다. 것도 하루 일거리가 너끈하다. 홋 이불 빠는 김에 베갯잇도 벗겨 빨아야겠다. 요호청도 벗겨야겠다. 이것저것 벗기느라 먼지는 얼마나 쏟아졌을꼬. 제자리에만 쏟아졌겠는가. 거실이며 주방까지 날아갔겠지 싶어서, 털고 닦고를 팔이 아프도록 힘들여 한다. 그래도 이리 버티는 걸 보니, 엊그제 맞은 수액주사 덕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벗기고 털어내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지만, 내일은 입히고 꿰매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야겠지. 이 방을 뒤집어엎었으니 저 방도 뒤집어야겠다. 그래도 힘 드는 줄 모르고 기운을 쓰는 내가 대견하다. 다 끝내고 나면은 졸도를 하려는가? 그러면 그렇지. 영감이 한마디 한다.
“대충 해. 죽네 사네 하지 말고.”
그 다음엔 뭘 할까. 비도 내렸으니, 아마 내일부터는 추워지겠지? 그럼 월동준비를 해야 하나? 스팀난로는 꺼내놓았으니 먼지만 닦아내면 될 것이고. 아, 작년에는 영감이 있는 안방의 전기난로가 말썽을 부렸지? 전기난로 하나 구입해야겠는 걸. 얼마나 할까? 영감은 추위를 타지 않으니 그냥 지내려나? 올해는 안 될 걸. 영감도 이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나인데.
에구. 것보다 더 바쁜 게 있네?! 시금치도 다듬어야하고 조림고추도 조리려면 멸치도 손질을 해야지? 내 할 일은 왜 이리도 많으냐. 머리 밑에 두 손을 또아리 틀고 누워, TV나 보며 실실 웃어 볼 시간은 없는 건가? 피~. 쳇~! 그리 하자고 들면 안 될 것도 없겠지만, 일 두고 그리는 하지 못하겠다. 그러고 보면 나도 팔자야 ㅎㅎㅎ.
비 내린 오후. 우울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본다. 우울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