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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춤을 출까


BY 만석 2019-11-12

어느 장단에 춤을 출까
 
지난 11월 10일은 내 큰아들의 생일이었다. 마땅히 그날 모여서 축하해 주어야했으나, 사정상 전날 저녁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 월요일엔 출근을 해야 하는 아들 딸 그리고 사위가, 주일 저녁에 모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었다. 전례로 보아 술이라도 한 잔씩 걸치면 자리가 길어지고, 그래서 다음 날의 출근에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아침엔 늦잠을 좀 자도 되니까 말이다.
 
마침 일본에 출장 중인 막내아들 내외와 손주 녀석이 빠졌다. 우리 내외와 큰아들의 세 식구, 그리고 딸 내외가 모인 조촐한 모임이었다. <오리지널 월남쌈 샤브샤브>.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우리 집 식구들의 직성에 똑 참한 곳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였으나 나는 금시초문이었고, 아이들은 주인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익숙한 장소인 것 같았다.
 
나는 내심 영감의 식성을 걱정했다. 뷔페는 어수선하고 귀찮게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궁시렁거리던 영감이고 보면, 보쌈을 하는 작업도 썩 내키지 않아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절호의 찬스를 잡아서, ‘암말도 말고 그냥 잡수시오.’라고 말을 할 기회만 벼르고 앉아 있었다. 종업원의 정갈한 셋팅이 끝나고, 따신 국물도 푸짐하게 준비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월남쌈은 참 오랜만이었다.
 
‘오잉~!’ 영감이 익숙한 솜씨로 보쌈을 싸고 있었다. 별일이다. 허긴. 사회생활을 얼마를 했는데. 다행이었다. 
모두 생일축하 인사들을 주고받자, 부지런히 보쌈을 싸던 영감이 일어섰다.
“아빠. 이쪽이예요.”아들이 영감이 나가는 반대편을 가리키며 따라 일어섰다.
“아냐. 알았어.”
 
아들은 아빠가 화장실을 찾는 줄 알았는데, 영감은 카운터로 가는 중이던 모양이었다. 계산을 하고 돌아오는 듯 했다. 이럴 땐 아이들 눈치를 보지 말고 내가 나서야 했다.
“아니, 난 더 먹을 건데, 계산을 먼저 해버리면 어째요. 그만 먹으라고?”
“아니. 더 먹으려면 더 시키면 되지. 더 시켜 더 시켜.”
 
에구. 입이 방정이지. 지난 번 모였을 때, 영감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큰아들이 잽싸게 일어나서 계산을 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딸 내외와 동행을 해서 밥을 먹었을 때에도, 사위가 얼른 일어나서 계산을 하더라는 말이지.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일장 훈시를 했겠다?!
“애들 일어나기 전에 얼른 일어나서 계산 좀 해요.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리 굼뗘서 ㅉㅉㅉ.”
 
영감은 그날 내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오-버를 한 거였다. 일어나도 너무 일찍 일어나서 계산을 했으니, 더 먹고 싶은 사람들 입을 닫아버린 꼴이 되지 않았는가. 참 참 참. 남자들이라니. 어찌 그리 시시콜콜 붙잡고 일러줘야 알까. 아니, 남자들 모두를 비난 할 필요는 없지. 적어도 우리 남자는 그렇더라는 말씀이야. 어느 때는 너무 잘 알아서 탈이고, 이럴 땐 어린아이 같다니까.
 
암만해도 사위와 딸아이는 더 먹지 싶었다. 고기가 바닥이 나기 전에 내가 주문을 해야 했다.
“여기 고기 좀 더 주세요. 우선 3인분만 더 줘 보세요.”
“아이, 엄마. 아빠가 우리 입 닫으려고 후딱 계산하고 오셨는데 더 먹어도 되요 ㅎㅎㅎ.”
“아니지. 니들이 계산할까봐 부지런떠신 게지. 아빠가 너무 일찍 부지런을 떠셨구나. ㅋㅋㅋ.”

머쓱한 영감은 연신 손짓으로 ‘더 먹어 더 먹어’ 했다. 이래서 큰아들 생일도 하하호호 웃음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