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에 걸맞는 행복 찾기
나이가 드니 느는 건 질병뿐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이 넘의 질병은 어이 알았을꼬. 기다리지도 않았고 반갑지도 않은데, 자꾸만 달라붙는다. 도대체가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을 얻고, 나는 근자에 아연실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가 차고 메가 차다.’는 옛말은 이럴 때 쓰기에 제격이겠다. 조물주는 사람에게 한 가지만 주지는 않으신다지. 이런 걸 주시면 저런 것도 주신다는 말이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시다고도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다 손 치고, 나를 비켜서 가기는 억울하셨단 말일가?
내 유년은 6.25전쟁으로 만신창이었다. 실향민이라는 꼬리표는 내 중고등학교까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때의 나를 알지 못하고 지금의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게 ‘행복한 여자’라고들 한다. 부농의 시댁을 두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키다리아저씨’라는 남편을 만나서 남다른 사랑을 받아다는 게, 내가 행복한 여자라는 둘째 이유라고들 한다. 게다가 참한 딸 아들을 둘씩이나 두었고, 와중에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살아주니 그것이 세 번째 행복한 여자라는 이유라고 한다. 가히 기분 좋은 말들이니, 모두 다 맞는 말이라고 해 두자.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병은 자랑을 하라’했으니, 내 병 자랑을 좀 해보자.
<식도암>으로 10년을 투병하고 완치판정을 받았으나, 수술자국이 아니어도 항상 불안한 게 사실이다. 아직 마음은 무거운데, <녹내장>과 <백내장>까지를 얹어 주셨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무서운 <일과성 허혈뇌질환>을 주시다니.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는 또 뭐람. 한두 가지만 주어도 이겨내기 어려운 나이이거늘, 어쩌자고 이렇게 한꺼번에 마구마구 쏟아 부어주시는 걸까. 그러니 <우울증>이 덤으로 따라와도 할 말이 없지.
손 놓고 앉아만 있을 내가 아니지. 그러나 내 재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는 운동으로 잡을만은 하다. 아니, 참을 만도 하다. 그러나 <녹내장>과 <백내장>, 그리고 <일과선 허혈뇌질환>은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녀석들이다. 꼼짝없이 병원에 아니, 의사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그런데 사실은 <우울증>을 어제까지도 우습게 여겼다. 그 때문에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정말 바보들이라고 비웃음을 쳤다. 그러나 ‘설리’의 자살로, <우울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쯤에서 딸아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어느 날. 막내딸아이 내외의 밀담을 들었다. 내가 들을까봐 소근거린 건 아니었으니, 밀담이라기에는 어패가 있긴 하구먼. 엄마도 들어보라는 듯도 했다.
“엄마가 복지관엘 가보니까, 호호할머니들만 계셔서 가기 싫으시데. 당신이 생각하기엔 복지관에 계신 그 할머니들이 몇 살이나 되셨을 거 같아?”
“경로당엘 가지 않고 복지관 출입을 하셨다면 아마 65세에서 75세 정도?”
“그치 그치. 그럼 그 할머니들을 ‘호호할머니’라고 하신 우리 엄마는 몇 살이셔? 호호호.”
“흐흐흐.” 사위도 따라 웃었다. 그러니까 엄마도 별 수 없는 ‘호호할머니’라는 말씀이다.
맞다. 맞는 말이다. 나도 별수 없이 ‘호호할머니’대열에 끼인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꼴이다. 이제쯤 <녹내장>도 <백내장>도 올만한 나이란 말이지. <일과성 허혈뇌질환>이 왔다고, 하나도 이상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50년의 직장생활을 했으니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도 당연히 직업병으로 올만도 하고. 그래서 이런 병 저런 병에 우울하다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우울증>도 올만 하지 않겠어? 이만하면 조물주의 심정도 헤아릴만 하니, 모두 다 내 것으로 보듬어 안자. 이왕에 안을 것이면 오지랖이 마냥 넓은 양, 아무렇지도 않은 듯 힘껏 포용하자.
<우울증>은 초기라서 한 알의 약을 처방 받았다 그러나 내 병은 내가 더 잘 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는다. 그리고는 병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만 일찍 찾아오고 늦게 찾아오는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나는, 늙고 병이 드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직 내 마음은 이팔청춘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인정하자. 칠순잔치상도 자식들에게 이미 거창하게 받은 지 오래고, 이제는 팔순을 향하는 나이가 아닌가. 왕년의 <행복한 여자>로의 삶은 이제 추억 속으로 보내자. 기억하고 싶을 때만 잠깐 잠깐 꺼내어 보자는 말씀이야.
그러니 이젠 ‘내 나이에 걸맞는 행복’을 찾아 <우울증>을 이겨내자. 다른 이들이 말하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내가 찾고 손수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자는 말씀이야. 내 나이에 걸맞는 행복, 다른 이들이 지금 부러워하는 행복말이지. 아, 몸이 아플 때마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리어 병원을 찾을 수 있음도 행복이고,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크고 빛나는 행복이 아니라 소확행(小確幸)부터 찾아보자. 작은 것으로 크게 행복해 하고, 그래서 큰 기쁨을 얻는 나만의 행복. 그것이 이 나이에 걸맞는 참행복이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