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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갤러리를 찾아서


BY 정아네스 2019-10-03

황간역 갤러리를 찾아서
 
  황간역에 내리니 흔들 그네에 앉아있는 목각 인형이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옆자리를 비어두어 누군가가 와서 앉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행여 오랜 시간 멀리 떠난 연인을 기다리다가 살갗이라도 탈까봐 씌워놓았을까, 모자와 스카프가 외로움에 무덤덤한 인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갖가지 화분도 볼거리요, 장독대에 써놓은 다양한 시들도 역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황간역은 각종 전시회가 개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명 황간역 갤러리. 2019년도 전시일정을 보니 각종 서화전, 민화 작품전, 켈리그라피전, 빨강 머리 앤 삽화전, 섬유아트전 등 여느 전시회장 못지않다. 이미 내년까지 전시 예약이 되어 있어 황간역 갤러리는 문화행사의 장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전시회였는데 반갑게도 작가의 고향이 태백이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태백지역의 모습이라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그 지역 광부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진솔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백의 판자촌 광경을, 쇄락해가는 탄광촌의 모습을, 작업장에서의 광부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모든 광경을 애정과 사랑으로 보듬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있기에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서 깊은 울림이 느껴지나 보다.

  기차역에서 나와 역 주변을 둘러보려고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길을 묻는다.
면소재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초등생에게 면소재지라는 단어가 너무 어려웠는지 아이는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시내가 어디야? 마트도 있고, 시장도 있고 이런데 있잖아.”
그제야 아이는 불쑥 대답한다.
“CU 알아요?”
아니, 모르는데?”
 
  편의점 CU를 모른다는 나의 말에 아이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내가 너무 어려운 숙제를 내준 거 같아 미안해진다. 고민하던 아이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자기를 따라오라는 무언의 행동인 것 같아 아이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50미터쯤 갔을까, 갈림길 앞에서 아이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 쪽으로 가세요.”한다. 말로 설명을 하기 보다는 직접 안내하는 게 더 쉬웠던 모양이다.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낮에 영동역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이 떠오른다. 영동역에는 잠시 머물렀는데 열차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역 근처 시장을 둘러보려고 했다. 지금처럼 초등 저학년들에게 큰 시장의 위치를 물었는데 그들도 방금 전의 초등생처럼 직접 나를 안내했다. 아이들이 하도 고마워서 손에 들고 있던 꽈배기를 하나씩 주려고 했다. 방금 튀겨낸 꽈배기라서 쫄깃쫄깃한 게 맛도 있고, 혼자서 다 먹기에는 양도 많아서 아이들과 나눠 먹으면 좋을듯하여 권했는데 아이들이 손사래까지 치며 뒷걸음질 치는 게 아닌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 하나, 납치나 유괴범들이 많아서 요즘 초등학생들은 낯선 사람들은 따라가지도 말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작은 녀석이 나에게 매번 주의를 주는 사항인데도 또 깜빡했다. 나는 아침에 학교 가려고 가방 메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차를 곧잘 세우곤 한다. 같은 방향이면 같이 태워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차를 세우는 건데 지금까지 그 어떤 초등생들도 차에 올라탄 적이 없다. 그때마다 작은 녀석은 엄마는 유괴범 되고 싶냐고,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치곤한다. 어수선한 세월 때문이라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은 섭섭하고 착잡하다.

  아이가 알려준 대로 길을 간다. 먹음직스런 대추와 감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둥그런 보름달이 뜬다. 마트가 보이고, 음식점이 보이고, 옷가게가 보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 모두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여행길에서만큼은 나는 그 무대에서 내려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평범한 삶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책가방을 메고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도,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가게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모두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싶은, 소소한 일상의 풍경이다.

  다음 여행지로의 이동을 위해 환승을 했는데 4303 열차다. 대전에서 영주까지 가는 무궁화호인데 먼 곳에서 보게 되니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난 듯 반갑다. 내리지 않고 있으면 영주까지 갈 텐데. 오늘도 날이 저무니 귀소본능이 날갯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