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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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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의 추억


BY 오늘풍경 2019-08-20

을왕리라는 해수욕장을 알게 된 건 아주 오래 전 친구를 통해서다.
갓난쟁이 아이랑 을왕리에 갔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을왕리..을왕리...참 단어도 재밌다 했었다.
해수욕장이라 함은,  모름지기 푸른 동해바다가 으뜸이고 그 다음은 남해바다, 정 안되면 서해 만리포나 대천 해수욕장 정도는 가 줘야지 인천의 을왕리라니....완전 똥물이겠구나 싶었다.

작년,
일주일간의 휴가 기간동안 너무 더워서 어디 갈 생각도 못하고 남편과 동네 카페를 전전하며 지냈던 것 같다.
어디 갈 생각조차 못한 데에는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똑똑 떨어지는 낙수가 제법 되기 때문에 대야에 가득 받아진 물을 주기적으로 버려줘야했다.
누수업체에서 사람이 와서 우리집과 윗집을 번갈아 가면서 공사를 했고
공사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 있어야했다.
그렇게 휴가를 보내고,
누수도 잡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던 딱 8월 이맘 때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한참 바쁘던 남편이 토요일에 출근한 틈을 타 혼자 공항철도를 타고
을왕리 해수욕장에 갔었다.

똥물이라고 상상해서 미안해...

인천이라는 가까운 곳에, 이 넓은 해수욕장이라니, 그리고 생각보다 맑은 이 물빛이라니,
깨진 조개껍질 위로 찰랑찰랑 맑은 물이 모이는 지점도 있었다.
지금은 폐선이 된 어선도 운치있게 한 대 서 있고,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위 구름도 멋졌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새우깡을 까 먹으며 심한 무더위 속에서도 상담일과 집안일을 훌륭히? 해 낸 자신을 칭찬하고 이제 선선한 바람도 불고하니 한 시름 놓고 즐거운 가을을 만끽하자고 다짐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잠잠하던 천장에서 다시 똑똑...
지난번에 윗집 파이프의 구멍을 메웠는데, 이번엔 빌라전체 방수문제라고 한다.
빗물이 내려가는 파이프 코킹작업 등을 다시 해야한다고 했고, 고이는 물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공사관련에서 누수업체 사람이랑 옥신각신 다툼이 있었고,
속상한 마음에 남편과 다시 을왕리를 찾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온 을왕리.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왕산 해수욕장과 을왕리 둘 다 갔고,
남편과 해변을 장시간 산책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조용한 성격의 부부는 다툼이란 것을 너무 싫어하고,
잔잔한 호수처럼 살기 때문에 수면에 파문이 일면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서로를 무척이나 측은해한다.
그러면서 그 측은지심이 서로 민망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장난을 치는데, 그 모습을 남편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예민한 나는 그 모습에서 아주 작은 슬픔을 느낀다.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생기면...너무 짠할 것 같애..난 그게 싫어.
무자녀 선택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지만 난 남편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리고 나 자신 말고 측은한 어떤 대상이 생기는 것을 나 역시 원하지 않는데,
내게 남편은 가끔 그런 존재다.

두 번의 을왕리 추억을 뒤로 하고,
1여년이 지난 올 여름. 우리 부부는 다시 을왕리를 찾았다.
1년 사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겨울에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는 사실이고, 21년도에는 시스템에어콘이 달린 새 아파트에서 여름을 나게 될 것이라는 설레임이 생겼다는 점이다.
물을 싫어하는 남편은 해수욕장을 싫어하지만, 나는 기어이 몸을 바다에 담그고 싶었다.
결국 나만 해수욕을 하기로 하고 준비물을 챙겨 갔다.

작년 8월달에 마주한 바다와는 달리,
7월의 을왕리는 무척이나 활치차고 생명력이 넘쳤다.
해수욕을 하기 위한 인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번잡스럽지도 않았다.
튜브 대여점도 있고, 파라솔도 대여해 주고, 샤워장과 탈의실 등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자리가 너무 가까워 서로 인상 쓸 일도 없었고, 날씨도 적당해 나는 모래사장에 오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치마를 입고 갔기 때문에 치마와 윗옷만 벗으면 바로 해수욕 복장이 짜잔~
남편은 그늘에 앉아 군것질도 하고 사진도 찍고 바다감상을 했다.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같이 놀자고 하니 싫단다.
아쉽지만 싫다는 사람 강요하고 싶지 않다. 내린천에서 래프팅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강요했다가 물을 더 싫어하게 만든 원인을 만들기도 했었기에 지금은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이토록 바다를, 해수욕을, 수영을, 파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5천원 주고 대여한 노오란 튜브에 매달려 3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혼자 놀았던 것 같다.
중간 중간 남편 뭐하나 바다위에서 보면 파라솔 그늘 아래, 돗자리에 앉아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이 물을 싫어한다고 너무 아내를 물과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바다에서는 혼자였지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많이 웃었다.
나를 바라보던 남편은 내가 파도에 밀려 해변으로 오면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지금도 가끔 열어보면 내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더 놀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남편 지루할까봐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샤워실에서 씻고 옷 갈아 입는 동안 역시 그 앞 벤치에서 기다려주는 남편.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다음 날 당장 한강 수영장 가자고 한다.
아내가 물과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깊이 깨달은 듯 했다.
그리고 여름 산행하면 항상 옥신각신 하던 문제...
나는 계곡에서 꼭 알탕을 해야한다 주장했고,
남편은 불법이고 걸리면 벌금을 내야한다, 남이 보면 불쾌하다, 하지 말라고 정해진 것은 하지마라..
주장했던 문제..그래서 항상
쏴쏴쏴~ 떨어지는 계곡을 눈으로만 느끼고 왔었는데,
올 여름산행에서 나는 기어이 .....그 계곡물의 차가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왔다.
남편은 당연히
"나 이 여자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망부석.

물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에메랄드 빛의 투명한 물을 좋아하는 나는 세계에서 물빛으로 손꼽히는 곳에도 가 보기도 하고, 스노쿨링 하면서 열대어들과 놀고, 비록 체험수준이지만 스킨스쿠버도 해봤지만,
정말 마음의 쉼이 필요해서 갔었던 을왕리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일상에 충실한 요즘 문득 문득, 이번주 주말에 을왕리에 가야겠다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마치 '을왕리'에 가면 진정한 쉼이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처음 혼자 갔었을 때
바다가 주는 안식을 제대로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을왕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