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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나도 젊었었으니까


BY 만석 2019-08-06

그 때는 나도 젊었었으니까
 
“엄마. 우리 공항에 나와서 지금 출국심사 중이예요.”
“엄마 구두는 우리가 다 처리할 테니, 택배아저씨가 오시면 엄마는 구두만 보내시면 돼요.”
베트남으로 6박 7일의 휴가를 떠나면서 막내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여름신이 마땅치 않다는 소리를 들은 딸아이가, 그 바쁜 와중에 CR*CS신발을 주문해 주고 휴가를 떠나는 중이다.
 
고가(高價)도 아니고, 가볍고 편해서 나 같은 늙은이가 신기에는 안성맞춤이라, 나는 몇 년째 여름이 오면 CR*CS를 애용한다. 그런데 배달 된 CR*CS가 내발에 작아도 너무 작다. 전의 것과 같은 사이즈인데 이상하다. 교환을 하려니 바쁜 딸아이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녀와서 교환을 하라 하니 다녀오면 교환 날짜가 지나서 불가능하다 한다.
 
딸아이는 출국을 하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회사 일을 마무리 짓고 새로 시작한 강의를 끝내고, 퇴근을 해서 여행 준비를 하고 자정을 바라보며 시방 출국을 하려는 중이다. 피곤이 역력하여 목소리까지 갈라진 게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내 신발 주문도 사위가 했다 한다. 에구~. 더 미안스럽구먼. 사위도 그날까지 정상근무를 했다는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와서 구매할 것을….
 
이렇게 아이들은 출국을 했고, 새 신발은 별 탈 없이 내 손에 들어왔다. 공항에서 인터넷을 이용해서 내 신발을 수거해 가게하고 다시 새 신을 주문하고, 그네들은 비행기를 탄 모양이다. 참 좋은 세상임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한다. 사흘 뒤에 딸아이가 확인 전화를 한다.
“엄마. 새 신발 왔어요? 발에 잘 맞아요?”살뜰하기는. 뉘 집 딸내미인고. ㅋㅋㅋ.
 
“밤에는 나가지 마라라. 낮에도 혼자는 절대로 나가지 말거라.”
“선크림 듬뿍듬뿍 바르고.” 왠지 어린아이를 냇가에 세워놓은 기분이다. 막내딸이지 않은가.
“구경 다 못하더라도 피곤하면 하루씩 호텔서 쉬어라. 너무 강행하지 말고.”
딸아이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네 네 하며 까르르 까르르 웃어댄다. 저도 다 컸다 이거지.
 
“가을엔 같이 다녀요. 요번에는 제가 워낙 강행군을 해서 모시고 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할 것 없어. 나도 전에 많이 다녔잖아. 지금도 네가 보내주는 사진으로 구경 잘 하고 있어.” 딸아이는 매일 매일 사진을 전송한다. 그러니끼 나는 앉아서 베트남을 구경하는 셈이다. 베트남 현지도 지금의 우리나라 같이 더운 절기라고 하니, 앉아서 여행을 한다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다 싶다.
 
불현 듯 18살의 막내딸아이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보내고, 마음 졸이던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일본 유학을 보내고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대로 전화도 할 수 없었던 터라,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사 남매가 외국으로 나갈 때마다 졸이는 마음은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어린나이에 보낸 막내딸아이의 여행과 유학은 더 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공연히 보냈는가 후회는 안 했겠는가.
 
이제는 바로 내 곁에 있는 듯 생생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킨다. 아니. 딸아이 곁에 든든한 보디가드를  붙였으니 안심이 된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고백이겠다. 내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이 좋은 세상의 가운데 있음을 오늘도 감사한다. 지금은 그때의 그 경험들을 살려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벌어먹고 살지만,  나에겐 그때 그 시절이 더 좋았음도 솔직한 고백이다. 그 때는 나도 젊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