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3,505

나는 좀팽이다


BY 새로미 2019-08-02


나는 좀팽이다. 왜 이다지 속이 좁아터진지 모르겠다. 안 그래야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마음을 몇 번이나 먹어도 그게 잘 안 된다. 누구 말마따나 ‘쿨’하게 살아야지 하다가도 자꾸 서운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샘물처럼 퐁퐁. 그러다보면 다시 또 섭섭해진다. 이런 좀팽이가 어디 있냐 말이다. 환갑을 넘어 이젠 ‘종심소욕 불유구’가 되어야 할 나이가 가까워오는데, 이 무슨 덜된 모습이냐 말이다. 사람이 아직도 덜 된 걸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으나 서운한 건 또 서운한 것이니 어쩌란 말인가.

한 벗이 있었다. 그 친구가 부탁하는 웬만한 건 다 들어줬다. 내 시간, 돈, 마음 상관없이. 언제든 부르면 달려갔고, 밥을 샀고, 차를 샀다. 푸념하면 들어주고 다독여주었다. 절대 충고하거나 잘난 척하지 않고 조용히 그 친구 편을 들어주었다. 새벽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도, 왜 당신 남편에게 하지 않고 내게 하느냐는 말 하지 않고, 가서 처리해주었다. 그뿐인가. 놀란 가슴 진정시켜 밥 사주고 병원에 데리고 가느라, 내 일에 차질을 빚을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나는 그 벗에게 그렇게 했다.

엊그제 그 친구에게 처음으로 작은 부탁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나에게는 긴급한 일이었다. 그 친구가 능히 가볍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고민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머리가 띵했다. 힘든 일이고 돈이 드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 친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거절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누워서 떡 먹기’ 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 친구도 그걸 안단다. 그런데 싫단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 말이다. 아, 누워서 떡 먹기가 어려운가! 아무튼 거절당했다.

나와 그 벗과 관계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었고, 신뢰가 없었나 싶었고, 지금까지 관계는 무엇인가 싶었고, 허탈하기 그지없다. 사람의 속성이라는 것이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마음이 다르다지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수없이 부탁을 들어줬고 편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작은 부탁을 거절당하고 만 것이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쉬운 일인데 하기 싫단다.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싶긴 하다. 그런데 자꾸 섭섭하다. 가끔은 괘씸해지기도 한다. 이 무슨 좀팽이 같은 마음인가 말이다.

아니 할 말로 베풀었다면 그것으로 끝나야지, 무슨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도 다른 이들에게 받은 게 많은데 그걸 생각하고 잊어야지 싶다가도, 속에서 불끈거리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란 존재는 다 그런가, 나도 그런 적은 없나, 성찰을 해보다가도 속이 상한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한 행동이었는데, 이제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속이 부글거리는 건 유치한 거다. 틀림없이 유치하다. 그러니 마음을 다스려야지 싶다가도 갑자기 속이 뒤집힌다. 이 무슨 좀팽이 같은 마음인가 말이다.

그래, 그냥 난 좀팽이라고 생각하자.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나와 결부되지 않았을 때는 대인처럼 굴어도, 내 일과 결부되면 좀팽이가 되는 게 보통이지, 그러니 성인군자가 되기 힘든 거지, 나라고 별 수 있나, 스스로 위로한다. 그걸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수양’이라는 거잖아. 난 수양이 덜 된 거야, 앞으로 살아갈 날도 남았으니 더 성실히 수양하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스스로 위무한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세상이 어지러운 거 아닌가, 난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야, 스스로 판단한다. 이 무슨 좀팽이 같은 짓인가 말이다.

이 글을 쓰는데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온이 봐주러 오실래요? 저 아범과 저녁 모임에 나가볼까 싶어서요.”
“그래? 알았어! 갈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냥 대뜸 승낙한다. 아기 볼 생각에.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온이, 흔히 말하듯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랑 놀면서 이 부글거리는 마음을 달래볼까.

옛말에 “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앗공이를 귀애하라”는 말이 있다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다. 아무튼 지금 좀팽이 같은 내 마음을 외손자 온이가 달래주리라 기대하면서, 마음이 바빠진다. 너무 급해서 글이 제대로 됐는지 어쨌는지도 모른 채, 마무리한다. 마음은 벌써 외손자에게로 달려간다. 역시 나는 좀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