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결혼기념일
오늘은 50주년 결혼기념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도 살았구먼.
아침에 막내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그래. 고마워~.”
“점심에 갈게요. 육개장 사 갈 테니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점심을 같이 먹자면서 아무 것도 하지 말란다.
나는 딸이 좋아하는 김을 굽고, 명란젓을 익히며 영감에게 말했다.
“막내가 온다네요. 결혼기념일이라고.”
“결혼기념일은 한 번 했으면 됐지. 뭘 또….”
말은 그리 해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그래두 고맙잖우.”
허긴. 이제 저도 제 일이 있어서 바쁠 텐데 말이지. 막내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누.
포장한 육개장과 밥까지 들고, 낑낑거리며 막내딸이 들어선다.
“아무 것도 하지 마시라니깐.”
“아무 것도 안 했다.”
살뜰히도 챙겼다. 영감 몫과 제 몫은 얼큰한 육개장이고, 그리고 내 것은 담백한 육개장이다. 나는 매운 걸 못 먹걸랑. 아래층에 혼자 점심을 먹을 며느님이 걸려서 부르려다가, 아서라. 설거지나 시키게 되지 싶어서 그만 뒀다.
점심을 먹고 나니, 현관문 키 번호를 누르고 며느님이 들어선다. 에구. 부를 걸 그랬나?
“딸기 사왔어요.”
“와~. 내가 좋아하는 딸기다. 이렇게 많이. 반은 아래층으로 덜어가세요.”딸이 반색을 한다.
“저희 건 있어요. 아가씨가 반 덜어가세요.” 두고 자시라며 딸이 손사래를 친다. 며느님도 참. 이왕이면, ‘오늘이 아버님 어머님 결혼기념일이라서 딸기를 사왔어요.’ 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이래서 손해를 보기도 하지. 속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니까.
커피를 타고 딸기파티를 하며, 우리는 토요일에 있었던 ‘금혼식’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어쩌자고 그렇게 두둑한 봉투를 건네 줬누.”
“마음 같아서는 더 두둑하게 하고 싶었는데…. 금강혼식(金剛婚式)(60주년)때 봅시다요.”
“우리가 그때까지 살기나 할까.”
“무슨 말씀을!”며느님과 막내 딸아이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합창을 한다. 아들들과 사위는 지난 토요일에 봤으니, 오늘은 며느님과 막내딸만으로도 족하다. 암. 족하지.
기분이 좋은 김에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우리 내외만 남자, TV를 보고 있는 영감에게로 다가간다.
“오늘 결혼기념일이니까 나한테 한마디만 해 봐봐.”
“???” 의아하다는 눈길로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무슨 말이든 해 봐봐.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라든지, 아니면 나를 만나서 당신이 고생했다라든지.”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구 이러시나.”그윽한 눈길로 쳐다는 보았지만, 결국 나는 오늘 영감에게서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고생했다.’고 한 마디만 들려주었으면, 나도 백점을 주려고 했는데. 멋대가리도 없는 영감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