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만석 조회 : 387

엄마는 막내딸을 늘 사랑해

엄마는 막내딸을 사랑해
 
내겐 두 딸이 있다. 물론 아들도 둘이 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70년대의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나는 양껏 욕심을 부렸다.
네 번의 유산을 경험한 뒤라서 아마 오기가 발동을 한 게 아니었을까. 아, 외아들에서 손이 끊기게 됐다고 걱정들을 하시는 시부모님에 대한 사려도 작용을 했을 테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셋째로 태어난 둘째 딸아이가 아들이었더라면, 나는 아마 넷째까지 는 자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반드시 둘이어야 한다는 게 내 소신(所信)이었으니까. 아마 넷째가 딸이었으면 다섯째도 낳았지 싶다고, 이제는 웃으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딸도 둘이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이제는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자랑삼아 하게 된다.
 
큰딸아이가 이른 결혼을 하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니, 막내 딸아이가 서른일곱 살까지 내 곁에서 제 언니 몫까지를 하더라는 말씀이야. 곰살맞고 애교스러운 그녀는, 다른 형제들도 그랬지만 내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아이였다는 말이지. 아, 속을 썩인 일이 있기는 하지. 서른일곱 적지 않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니, 이 어미 속이 썩지 않았겠는가. 남보다 못 가르친 것도 아니고 어디가 모자라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드디어 서른일곱에 결혼을 하겠다며 데리고 온 예비 사위감. 오, 마이 갓!
일곱 살의 연하남이렸다?! 이런이런. 내 막내아들보다도 네 살이나 어린 신랑감을 데리고 처들어왔으니 이를 어째. 말수 없는 제 아버지도 두 아들들도 혀를 차며,
“에~이. 그건 너무했다.”라고 이구동성.
 
“아니, 어디가 모자라는 녀석이 아니고서야….”
그런데 멀쩡하단다. 내가 봐도 멀쩡하다. 아주 듬직하기까지 하다.
“그 부모님이 승낙을 하겠는가.”고 물으니 이미 승낙을 얻었다나?! 제일 난감해 하는 쪽은 오히려 내 막내아들이다. 한참을 어린 매형을 두게 생겼으니 그도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막내딸아이의 선택을 믿는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
 
남들의 부러움을 사며 이렇게 결혼을 한 이들 내외는, 정말 ‘이상적인 부부’로 살아간다.
한쪽에서 내놓는 제안은, 절대로 ‘노~!’하는 법이 없다. 맞아도 어쩌면 저렇게 잘 맞을 수가 있을까 싶다. 큰소리를 내는 법도 없다. 그것도 그들의 큰 복이다. 나에게도 커다란 복이다. 맞지 않아서 티격거리면 내가 얼마나 걱정스럽겠는가 말이지.
 
미국에서 입국을 하고는, 하던 일을 접고 다른 분야의 일을 찾겠다 하여 한걱정을 했다.  이제 그 나이에 다른 직장을 개척한다는 게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입국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다시 그녀를 스카웃을 해 간다 하니 이 아니 좋은 일인가. 어미의 기도 덕일까. 일이 아주 잘 풀리는구먼.
 
어제는 저녁에 예고도 없이  딸아이가 현관 번호판을 누르고 들어온다.
“웬일이야. 오랜만이네. 어디 좀 안아보자.”
“아이고 엄마는. 며칠이나 됐다구.”하며 안긴다. 나는 언제나 이 아이를 보면 아주 오랜만인 것만 같다. 오매불망(寤寐不忘) 늘 그리웠다는 이야기지.
 
“이건 파 썰은 거구요. 냉동실에 얼려왔어요.”
“이건 초코렛사탕. 어디 나가실 때 꼭 넣고 다니세요. 당 떨어지기 전에 미리 자셔요.”
“이건 카스테라. 제사 지내고 난 간식거리가 다 떨어졌지 싶어서요.”
“이건 무차 우릴 때 쓰시라고 하나 사왔어요. 오래 된 저 주전자는 버리세요.”
“그리고 이건 밀대걸레청소기랑 물걸레요. 걸레질하기 힘드실 것 같아서요.”
 
나는 막내딸이 오면 늘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아니,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걱정이 하나 생겼다. 사위의 직장 연구소가 이전을 하는 바람에 출퇴근길 교통이 사나워졌다. 다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내 집에서 한참은 멀어질 게 뻔해서 걱정이다.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막내 딸아이를 보기가 더 어려워지겠지. 어쩌나. 지금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