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라가기가 너무 버겁습니다
오늘은 스터디가 있었습니다. 1시간 30분의 강의가 끝났지만, 화창한 봄 날씨에 매료되어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매 주의 화요일은, 영감으로부터 무언의 묵인을 약속받은 자유로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영감의 점심은 혼자 해결이 되도록 준비를 해놓았으니, 오늘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지금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큰 손해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막내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혼자 집에 있던 딸아이가 흔쾌히 동조를 했습니다.
“어디로 가요?”
“<애슐리> 어때? 여러 가지가 있으니, 먹고 싶은 대로 골라 먹을 수 있잖아.”
내가 딸아이의 집으로 가서, 딸아이의 차를 타고 <애슐리>로 갔습니다. 아마 1시간이 넘게 기다렸지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도 이제는 나 같은 늙은이를 배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문도 무인시스템. 자리도 안내를 해 주는 이 없이, 내 스스로가 알아서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어여쁘고 상냥한 카운터의 아가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에서 취업 걱정을 하고 있지나 않을런지. 딸아이가 없이 혼자였더라면 나도 한참을 쩔쩔매고 있었겠지요.
딸아이는 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탐색을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혜택도 받고 남다른 서비스도 받았나 봅니다. 그러나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직원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런 거 모른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데, 왜 주눅이 들어서 눈을 굴렸을까요. 오늘은 특별히 현찰을 내고 당당하게 입장을 했는데 말입니다.
아, 나는 그래도 자판이라도 두드리니 두리번두리번 살펴서라도, 젊은이들을 따라 흉내를 내겠지요. 그러나 자판도 두드리지 못하는 손님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텐데요. 그러고 보니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손님은 별로 눈에 띄지를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이는 이들은, 반드시 나처럼 젊은이들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야무진 딸아이가 걱정하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잘 따라오고 계신 거에요. 제가 엄마 나이쯤 되었을 때, 엄마 만큼 세상을 따라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예요." 라고요.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도 급변하는 세상의 모습이 버겁기는 한 모양이긴 한가 봅니다. 귀국 후 전업주부로 집에 있는 일 년동안에, 너무 많이 도퇴된 자신에 깜짝깜짝 놀라는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물론 대안은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기 싫으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젊은이들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말입니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고 늘 말은 그리했지만, 이제부터는 배우는 거 그만하고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배려 깊은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꼴통(?)은 따라가기가 힘이 듭니다. 노령의 인구가 많다고는 하면서, 왜 같이 살아가는 배려에는 인색할까요. 한 가지 예로, 지하철의 노인석이 그 수(數)가 적절한가요. 더 높은 연배의 어른이 보이면, 우리는 그나마 양보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노인석을 주지 않았느냐며, 앞에 선 노인들을 외면하고는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겠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인명(人命)은 제천(制天)’이라 하지 않습니까. 누가 감히 ‘그만 살라’고 하겠습니까. 저희(젊은이))들도 그리 늙어 갈 것이거늘, 오늘만 보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뒤에 서 있는 늙은이들도 좀 챙겨달라는 말씀이지요.
급변(急變)하는 세상 따라가기가 너무 버겁습니다.
2015년 6월의 어느 날 저녁 . 프로리다의 노을이 아주 고와서 달리는 차 속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