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며느님 흉 좀 볼라요
1월은 유난히도 집안 행사가 많았다. 시아버님의 기일이 있었고 영감의 생일이 있었다. 신정은 구정으로 물리려 했더니 떡국이라도 먹자 하니, 그도 며느님의 손을 비켜 갈 일은 아니로구먼. 또 손녀 딸아이의 생일이 있었고 큰아들의 십 주년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이제 꼴 적은 이 시어미의 생일도 1월에 끼어 있으니 며느님의 노고가 어찌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
내 며느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뵙지도 못한 시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했으렸다. 영감과 내 생일은 직장에 다니는 식구들을 챙기느라 주말에 모이고, 정작 생일 당일에도 또 챙겨야 했으니 얼마나 번거로웠으랴. 주말에 모였으니 생일 당일에는 내가 미역국을 끓여먹으마 해도 듣지를 않고 새벽 걸음을 하였으니, 이게 내 복이라고 말하기에도 민구스럽다. 것도 형평성을 운운하며 영감과 내 생일을 차별 없이 각각 챙기자니 어찌 힘이 들지 않았겠는가.
손녀 딸아이라고 대충 챙겼으랴. 불면 꺼질세라 놓치면 깨질세라 하나 뿐인 딸아이를 극진히도 사랑하는 어미이고 보니, 것도 만만치는 않았을 터다. 수수팥단지까지 비져 올렸으니 그 정성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누구는 제 새끼 고와서 챙기는데 뭘 걱정을 하느냐 하지만, 나는 그도 예사로이 넘길 일이 아니로구먼.
신정엔 이 시어미가 며느님 눈치가 살짝 보이더란 말씀이야. 그럴라 싶어서 수저라도 챙겨놓으려 하니, 그런 건 또 애들이 해야 교육적으로도 좋다나? 굳이 제 딸아이를 불러 상 앞에 세우니 물러설 수밖에. 아들의 말로는 결혼 십 주년 기념은 구정을 지나서 세 식구의 여행으로 계획했다 한다. 이럴 땐 내가 아주 부자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며느님의 손에 거금을 듬뿍 쥐어주면, 내 아들의 생색은 고사하고 내 며느님은 또 얼마나 행복해 하겠느냐는 말이지.
딸의 집에 간 김에 내 화장품을 좀 사러 같이 가자했다. 도통 종류가 많아서 혼자 고르기엔 역부족이다. 이젠 화장품 하나도 선뜻 사러 나설 용기도 없다. 며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네가 준 스킨이랑 로션이 어디 거였니? 좋던데. 스킨 로션을 다 써서.”
“꼭 그거라야 되나요? 다른 데 건 안 되나요?”
“아니. 내 피부는 싸구려라서 아무 걸 써도 트라블이 안나. 지난 번 거 괜찮던데.”
“저 스킨이랑 로션 새 거 있는데요. 그냥 오세요. 제가 드릴게요. 저 안 쓰는 거예요.”
이런?! 그러나 그냥 땡잡았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지. 쓰지 않는 화장품이 있을 리가 있나.
“와서 보시고 싫으시면 다른 거 사세요. 진짜 저 안 쓰는 거예요. 메이커도 좋은 거예요.”
아무튼 가서 보기나 하자하고 집으로 왔다.
곧 이어 며느님이 화장품을 들고 올라왔다. 스킨 로션 외에 영양크림이니 탄력크림이니 제 집에 있는 화장품을 다 들고 왔나 보다. 이제 결혼 10년차쯤이면 미운 짓거리도 하련만, 그런 재주는 타고나지를 못했나 보다. 남을 헐뜯는 일도 없다. 살면서 내 아들로 인해 속이 상하는 일이 없으랴마는, 내 속을 뒤집는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아무튼 그렇다고 그냥 낼름 받아쓸 내가 아니지. 마침 생일선물로 아이들이 쥐어 준 거금(?)이 있으니 좀 나눠 써야겠다. 그래야 어른답지 않겠어? 이야말로 주고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도 마다한다.
“집에 있는 거 드렸는데요, 뭘.” 욕심도 없다. 남들과도 일상이 이런가 싶어서 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욕심이 있어야 잘 산다하지 않던가. 어째 이리 물러 터졌는지 ㅉㅉㅉ. 에구. 시어미 못된 근성엔 며느님의 고운 마음도 흉이 되나 보다. 못된 시어미의 이 그릇된 근성이 흉이겠지. 훗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