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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만석 조회 : 320

며느님만 죽어나네

며느님만 죽어나네
 
오늘, 음력으로 영감의 생일이다. 막내아들이 미국 출장이 예정 되어 있어서 지난 토요일에 모두 모여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렇다고 정작 생일인 오늘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하지. 미역국이나 끓이겠다고 영감에게 통보를 했다. 영감이야 고개 한 번 끄덕이면 고작이지만.
 
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 현관의 걸고리가 벗겨지지 않아 애를 쓰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누가 왔냐?”
“저예요 어머님.” 에구. 며느님이 왕립을 한 모양이다.
 
“왜 왔어.”
“아침하러 왔어요.”
“아침은 내가 하지.” 하고 문을 여니, 며느님이 미역국을 끓인 압력솥을 들고 들어선다. 반찬도 줄을 선다.
 
만석이는 복도 많지. 그냥 모른 척해도 나무랄 이 없는데도 부산을 떤다. 어제 딸아이 생일을 챙기느라고 힘이 들었을 터인데, 오늘 또 애를 쓰고 있다. 살짝 눈치가 보인다. 아침 설거지를 마친 며느님에게 어서 가서 쉬라고 이른다. 아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면 쉬지도 못하겠네.
 
“점심에 국수 삶으러 올라올게요.”한다. 생일날 점심에 길이가 긴 면발을 삶아 먹는 건 우리 집만의 전통이다. 장수의 비결이라지. 그러나 며느님을 너무 번거롭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점심엔 자장면 시켜 먹자. 아가 학원 다녀오면 데리고 올라오너라.”
 
“아버님 자장면 안 좋아하시잖아요. 학원 보내고 올라와서 국수 삶을 게요.” 늘 외식을 싫어하는 영감이 문제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올라온 며느님은 맑은장국수를 먹이려고 손이 분주하다. 명이 길라고 긴 면을 삶아 먹는다는데 영감이 오래 살면 제가 더 힘이 들 걸 ㅉㅉㅉ.
 
영감도 나도 맑은장국수가 아주 맛있어서 커다란 대접을 비운다. 학원을 다녀온 손녀 딸아이도 그새 출출했던 모양이다. 맛있게 그릇을 비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며칠 전 이미 생일축하연의 자리를 가졌는데, 새삼 또 생일 당일이라고 며느님을 힘들게 할 일이 있겠어? 신정엔  또 힘들지 않았겠어?

그 하루 전날엔  내 시아버님 제사도 지내지 않았는가.  낑낑거리며 장을 봐다가, 새벽 잠을 설쳐가며 제수를 장만했겠다?!  그 사이 열이 불덩어리 같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며 남은 제수를 모두 장만하고. 그래도 내 할 몫이라고 시어미에게 sos를  타전하지도 않고 모두를 끌어앉고 치루더니.

또 며칠 있으면 이 꼴난 시에미의 생일이 다가온다. 아서라. 며느님 잡을 일이 있는가. 이건 아니다. 좀 있으면 설날도 다가오는데. 방법을 찾자. 외식 싫어하는 영감 챙기려다가 며느님만 죽어난다. 아무 일도 벌리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하면 아이들이 그리 하겠는가. 어쩐다?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막내딸이 현관을 들어선다.
“넌 또 왜 왔누?”
“저녁은 내 담당이라우. 저녁엔 아가 학원이 연달아 있어서 식사는 내가 맡기로 했어요.”
 
사전에 입을 맞춰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저녁의 외식은 당치도 않다. 아침에 상에 올리고 남은 반찬이 넉넉한데. 밥만 익히면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막내사위가 학회에서 회식이 있어서 저녁식사에 참석을 하지 못하니, 대충 그냥 먹어도 흉이 될 듯하지는 않겠다.
 
외식을 하게 되면 딸아이가 계산을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집에서 먹자고 내가 고집을 부리고 영감이 동조해서 밥을 앉히고 상을 차린다. 이것 보라지. 진수성찬이면 이보다 더 걸겠는가. 세 식구 마주앉아서 혼자 있을 며느님을 부르니 저녁도 차리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친다. 허긴. 쉬고 싶기도 하겠지.
 
막내딸아이가 만들어 온 케이크(사실은 난 이름도 모른다. 치즈 맛과 슈크림 맛이 나던데.)로 후식을 하고 나니 희희낙락 기분이 최고조다. 뒤늦은 귀갓길에 사위가 들고 온 크기도 푸짐한 딸기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며느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 덕에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다.
 
내 생일에는 기필코 며느님을 힘들게 하지 않으련다. 영감에게 의논을 해야겠다.
“요번 내 생일엔 당신이 쏘세요. 외식이 싫다고 한 끼야 못 때우겠수? 당신이 싫다하면 며느리만 힘들어요.” 누가 뭐랬느냐는 듯이 영감은 눈만 껌뻑거린다. 아마 영감도 그러자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