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어린가봐 2
검은 색 페딩 롱코트가 입고 싶다. 이제는 절대로 옷을 사지 않으리라던 작심이 무너지고 있다. 옷이 없어서는 아니다. 영감의 말을 빌리자면 짧은 페딩도 서너 벌 있고, 긴 페딩도 두어 벌이나 있다. 그런데 왜 꼭 검은 색 페딩 코트가 필요하냐는 말이지.
문제는 그 페딩들이 모두 장만한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페딩이 처음 유행할 때에 장만을 했으니 족히 10년은 되었을 것이고, 최근에 장만했다 하는 것도 5~6년은 작히 되었지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옷은 유행을 타서 작년에 장만한 옷도 구식이라면 구식일 수가 있다.
막내 딸 내외를 앞세우고 백화점엘 나갔다. 꼭에 보는 눈은 있어서 거금을 들여 검정색 페딩코트를 손에 넣었다. 모피반코트를 싸들고 페딩을 입자 딸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진도 모피보다 페딩이 좋수?”모피보다는 페딩이 더 젊어 보인다는 말씀이야.
새 옷을 입으니 어디엔가 가고 싶어진다. 그래. 이왕 나왔으니 청계천을 둘러봐봐? 딸아이가 저도 청계천야경을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며 부추긴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차를 주차장에 넣고 청계천빛축제에 참석했다. 해가 진 뒤라서 볼을 스치는 바람이 몹시도 차가왔다.
오랜만에 보는 빛축제는 장관을 이루었다. 이 추운 날씨에 야외공연장에서는 바이올린 연주회도 있었다. 주말이어서 인파도 많았다. 바이올린 선율을 멀리하며 청계천을 따라 오색이 영롱한 빛에 도취되어 추위도 잊고 셔터를 눌러댔다. 손이 곱아서 셔터나 제대로 눌렀을까.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8년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내 나들이는 꽤 괜찮은 추억을 만들었다. 춥다며 동행을 거절한 영감이 마땅치 않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오늘은 영감이 혼자 저녁을 해결했으니 봐 줘야지. 암, 봐 줘야지.
옷걸이에 걸린 페딩코트를 바라보는 나에게 영감이 말한다.
“그렇게 좋아?”아마 내 얼굴 표정이 유난히 즐거워 보였나 보다.
“코트가 좋은 게 아니라 청계천에 볼거리가 많아서 좋습디다. 진작에 구경을 좀 시켜주지.”
사실은 페딩코트를 사서 좋았고 청계천빛축제도 좋았고, 또 바이올린 연주회가 좋았다. 그러구 보면 나는 아무래도 철이 덜 든 모양이다. 페딩코트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청계천의 빛축제도 이 나이에 도취될 일은 아니다. 야외의 바이올린 연주도 내게는 걸맞다.
휴~. 나는 언제나 철이 들꼬. 그러고 보니 철딱서니 없는 마누라 데리고 사는 영감이 딱하다. 누구네 마누라처럼 곱기를 하나, 아무개네 안사람처럼 상냥하기를 하나. 곱지 않은 상판에 우거지 인상이나 그으며 철없는 짓이나 하니 한심하겠지. 암, 참 한심하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