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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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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어린가봐


BY 만석 2018-12-27

난 아직 어린가봐
 
크리스마스가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 줄 몰랐다. 예전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즐거운 날이었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크리스찬이라는 사람이, 아니 모태신앙인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솔직히 말을 하자면 아기예수의 탄생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즐거운 날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이 즐거웠고,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를 알아버리고 나서는, 부모님이나 오빠 언니에게서 선물을 받는 일에 행복했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일이 즐거웠다. 이 즐겁고 행복한 일은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줄곧 이어졌다.
 
결혼이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이런 천치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교회는 다니고 싶으면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초하루 보름이면 절에 다녀오시는 시어머님을 수발해야 했고, 벽장 속의 부적을 고이 모셔야 하는 나는 한낱 시댁의 무수리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의 크리스마스는 입에 담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고 시댁의 묵인이 있기까지 얼마나 처절한 안력이 있었는가를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하겠다. 시어머님이 부적을 불사르고 절에 가는 일을 끊기까지의 내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컸겠느냐는 말이지. 그래도 현명하신 시어머님이 포기하실 일은 포기하시고 꼴적은 며느리의 기를 살려주시니 감사한 일이었지 않은가.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맞아 시골의 시댁에 보냈더니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았더란다.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시어머님은 마침 귤이 있어서 그 귤을 봉지에 넣어서 아이들이 자는 머리맡에다 놓아주셨다 하니 이 아니 감격스러운가. 이렇게 내 크리스마스는 다시 즐거워졌고 아이들이 결혼을 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아니, 손주들이 곁에 있을 때까지는 괜찮았구먼.
 
큰딸네 식구가 미국으로 훌쩍 떠나고 큰아들이 살림을 나고, 작은 아들까지 직장을 따라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그래도 막내 딸아이가 서른여덟까지 내 곁에서 제 어미의 크리스마스를 챙겨주었다. 그러던 그녀도 짝을 만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훌쩍 날아 가버렸다. 이제는 크리스마스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멧 한 줄이 고작이었다.
 
누가 봐 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추리도 발가벗긴 채로 옥탑방에 가두어놓았다. 이제는 재미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교회에 다녀오는 일이 고작이었다. 내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그렇게 점점 더 시시해져 갔다. 큰아들 네 손녀 딸아이가 아니었으면 크리스마스도 잊을 뻔했다고 우스게 소리를 다 하지 않았는가.
 
올해. 막내사위가 한국본사로 발령을 받아 귀국을 했다. 당연히 막내 딸아이도 귀국을 할 수밖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시시하지 않겠는 걸.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브가 지나도 딸아이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미국에서 축하 멧이 오고 일본에서 반가운 전화가 와도 막내딸한테서는 여전히 무소식이다. 어쩐 일일까.
 
물론 내외가 오붓한 이브를 즐기겠지 하면서도 자꾸만 초인종 소리만 기다려졌다. 잠도 저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말똥말똥한 눈을 굴리며 그 긴 밤을 지새웠다. 아침 7시 30분.
“메리크리스마스. 따뜻한 성탄 되세요~^^”막내 딸아이에게서 멧이 왔다. ‘칫!’
그래도 어미라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답을 보냈다. 하루가 무의미했다.
 
성탄예배를 드리고 돌아와서야, 25일 저녁 6시 30분에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저녁 잡수셨어요?”
“아니.”
“아유. 잘됐네요. 어제 류서방이랑 데이트했더니 피곤해서 내내 잤어요. 7시까지 갈게요.”
 
어제는 내외가 즐겼으니까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저녁을 먹으련다고. 그러면 그렇지. 현관을 들어서는 내외의 양손이 묵직해 보인다. 육개장에  설렁탕을 포장해서 잔뜩 들고 들어와서는 냉장고를 채운다. 그리고는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가잔다.
“엄마 좋아하시는 거. 마늘보쌈 잡수러 가요.”
 
길 건너에 제법 맛을 내는 마늘보쌈집이 있어서 자주 들르는 집이다. 늦은 저녁에 빈 배를 채우느라고 추가(追加)에 추가를 외치며 희희낙락이다. 보쌈집을 나서며 배를 두드렸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막내딸 내외가 뒤처져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대형으로 사들고 들어선다. 그만해도 내 속은 다 풀렸구먼서두.
 
손님이 많아서 케잌은 동이 났고 아이스크림도 줄을 서서 20분이나 기다렸다지? 아이스크림에 대형 촛불을 꽂고 하나 둘 셋을 맞추어,
“메리크리스마스~!”합창을 한다. 것도 바닥이 보이게 다 퍼먹었구먼. 이제야 크리스마스 기분이 난다. 내년엔 추리도 예쁘게 세워야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든 어린아이다.
 
난 아직 어린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