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영감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렇게 한가롭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 딸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고 내 아들들은 또 어디로 가서 희희낙락일까. 머리로는 그러려니 하지만 가슴이 따르질 않는다. 왜 진즉에 이럴 줄을 몰랐을까. 일찌감치 저녁을 지어먹고 하는 일 없이 컴만 열고 앉았다.
미국에서는 이브가 아직일 것이고, 그래서 내 큰딸아이는 제 딸년들을 기다리며 벽마다 빈틈없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을 게다. 딸 사랑이 유별난 에미니까. 아마 먹을거리도 넘치도록 재어놨을 것이다. 그렇지. 드레스는 준비 아니했으려구. 크리스마스이브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지.
큰아들은 산타크로스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딸아이를 재우려고 열심히 엿을 고을 것이다. 오늘도 손녀 딸아이 선물을 내 손으로 사주고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가게엘 가지 않았겠나.
“산타할아버지는 어쩌면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실까요.”하더구먼. 알고 하는 소리인지.
그러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바로 그것이었다는 소리니 웃어야할지. 아무튼 그래서 내 큰아들 네는 시방 아이를 재우려고 쇼를 하는 중일 것이고. 그러니까 산타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아이와 어서 재우려는 아들내외의 신경전이 한창이겠지.
작은 딸아이는 아이가 없으니 두 내외가 와인 잔을 부딪치며 브라보를 외치려나? 내 키보다 더 큰 츄리를 세워놓고도 모자라서, 파리의 에펠탑을 닮은 장식품을 세우고 등을 밝혔더구만. 아, 현관문 밖에도 똬리 모양의 성탄 장식품을 달아놓았으렷다.
막내 아들 녀석은 일본에 떼어놓고 출장을 나왔으니, 그 아들이 안쓰러워서 아마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가 한참이겠다. 에미가 있으니 공연한 맘고생을 한다고는 못하겠다. 아, 선물은 한보따리 보냈다 하니 마음이 좀 덜 시리겠구먼. 지금쯤 친구들이랑 술이나 퍼 마시지 않나 몰라.
그럼 우리 두 늙은이는? 영감은 TV 속으로 들어갈 듯이 레스링 관전에 한창이다. 까짓것. 언더 테이커가 우승을 하면 뭘하고 랜디 오턴이 승리를 한들 뭣하겠는가. 한물 간 브럭 레슬러라면 또 몰라도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기에 저리도 열심일까.
한가로운 이브가 심드렁해서 앉았는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어디에선가 들려온다. 나는 엄마가 지어주신 새하얀 한복을 입고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독무(獨舞)를 맡아 놓았었지. 아무도 근접을 하지 못했다.
교회의 교단이 무대로 꾸며지고 나는 나비 같이 춤을 추었다. ‘징글벨’에 맞추어 춤을 추지는 않았겠는가? ‘아기예수의 탄생’의 연극에서 마리아를 맡아 하지는 않았겠는가 말이지. 또 이중창으로 알토를 맡아서 ‘그 어리신 예수’를 부르지는 않았으려고.
무대의 맨 앞줄에 앉으신 아버지와 엄마와 언니 오빠와 수 많은 교인들의 우렁찬 박수 속에 고운 화장이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낯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던, 그때의 크리스마스이브 속으로 나는 오늘 저녁 빠져 들어가고 있다. 이제 이렇게 한가로운 이브를 지내며 그때를 그려본다.
갑자기 안방 TV에서 함성이 터진다. 영감이 누구를 응원했는지 아마 승리를 한 모양이다. 그래. 것도 괜찮네. 그나마 영감이 없었더라면 더 씁쓸한 이브가 되었을 테지. 그래도 영감이 있어서 이만하길 다행일세. 허지만 어~이 아들딸들아. 멧이라도 한 줄 띄워 보내주었으면 어땠을까?
나이아가라와 레인보우다리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