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을 왜 샀어요
찬바람이 등으로 몰려든다. 겨울이 오고 있는 게다. 유난히도 추위를 타는 나는 겨울이 오면 아니, 초가을부터 잔뜩 긴장을 한다. 올해는 얼마나 추울까를 걱정하면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내복을 챙겨보니 올해엔 더 구입을 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지낼 만은 하겠다.
산행을 계속하려면 겨울 장비도 필요하다. 등산복은 작년에 입던 것이 아직도 멀쩡하다. 스틱도 작년에 쓰던 것 쓰면 되고, 바람막이 모자도 그런대로 견딜 만은 하다. 장갑도 작년에 쓰던 것으로 충분하겠다. 뭐가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하지만 그런대로 겨울을 지낼 만하겠다.
아, 올해에는 아이젠을 한 벌 준비해야겠는걸. 튼실한 놈으로 골라 거금을 주고 영감 것과 내 것을 마련했다. 자, 이만하면 겨울차비는 다 됐지?! 이제 눈이 내리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야. 날씨가 추운 건 걱정이지만 설원의 산행을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퇴근을 한 큰아들이 현관을 들어선다. 낮에 컴이 잠깐 이상해서 손을 좀 봐 달라 했더니 들른 모양이다. 네트워크 선과 스피커를 체크하고 나가다가, 거실에 놓인 아이젠을 보고는 묻는다.
“이거 누구 거예요?”내 집 거실에 있는 게, 누구건 누구 것이겠다고 묻는단 말인가.
“곧 눈이 내리면 미끄러질까봐.”
“엄마 아빠 거예요?”
“응.”자랑스럽게 대답을 하는데 아들의 반응이 격하다.
“아이젠을 신고 산행하시려고요?”어째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다.
“산이 미끄러우면 올라가지 마셔야지 아이젠을 왜 사세요.” 점점 얼굴빛이 붉어진다.
“아이젠을 끼워야 할 정도면 안 올라가셔야지요.” 한심하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엄마가 지금 아이젠 신고 산행할 연세세요? 큰일 난다구요.”
“….”
“이 아이젠 제가 갖고 내려가요. 아니면 바꿔 오시든지요.”다짐을 받으려고 소파에 앉는다.
“이런 거 신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전문 산악인들이란 말예요. 겨울엔 뒷산에나 오르세요.”
“….”
오늘따라 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엄마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지만 귀에 거슬린다.
“겨울 운동화는 있으세요?”
“응. 있다.”신발장에서 확인을 하고 재차 다짐을 한다.
“엄마. 이 아이젠 갖다 줘요. 아이젠을 신어야 올라갈 수 있는 산이라면 올라가시면 안돼요.”
다음날.
전화벨이 운다. 막내딸이다.
“엄마. 아이젠 사셨어요? 아니, 히말라야 원정 가시려우? 호호호.”
큰아들이 제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말리라고 했단다. 저렇게 걱정들을 하니, 아이젠을 물려야겠다. 멋지게 설원을 누비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이팔청춘인 줄 알았더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던 것 같기도 하다. 에구~. 내겐 북한산 둘레길이 제격이로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