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따다
내 집의 손바닥만 한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워낙 공간의 여유가 없는 집이라 운치를 따질만한 그림은 아니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주먹만 한 단감이 제법 주렁주렁 열린다. 이제야 좀 봐 줄만한 그림이 어우러진다. 사계절이 이랬으면 좋겠다.
이사를 온 첫 해에는 너무 오래 두고 보는 통에 떨어져서 작살을 내는 녀석들이 많았다. 올해에는 서둘러 잠자리채를 만들고, 사다리를 놓아 수확을 서둘렀다. 시골 출신이긴 해도 호미자루 한 번을 들어보지 못한 영감의 감 따기는 내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작년의 경험이 효력이 있어 제법 오늘 작업은 좋은 점수를 줄만은 했다. 높은 장대에 매달린 잠자리채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녀석들은 그 몰골이 온전했으나, 땅으로 떨어지는 녀석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으스러져 있었다. 감이 실해서 그렇다 한다.
급한 성미에 가지 채 꺾었으면 싶기도 했다. 그러나 영감은 아주 침착하게 곧잘 성한 녀석들을 뱉어낸다. 하나 둘 셋 넷. 곧 사과 박스가 차고 나는 즐거운 함성을 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걸면 하나 둘씩 건네며 인심도 썼다. 바로 옆집에는 맛보시라고 제법 치레를 했다.
영감의 큰 키가 이렇게도 고마울 수가. 이 가지에 몸을 붙이고 저 가지에 한쪽 다리를 벌려 짚을 땐, 간이 콩알만 하다가도 긴 콤파스가 고마웠다. 손녀 딸아이는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떨어진 감을 챙기느라고 분주하다. 오늘 일기 제목은 ‘감 따기’로 정했다 한다.
와~. 하나씩 모은 감이 한 접 반. 아니, 부서진 녀석들까지 하면 두 접은 되겠다. 단감이어서, 아직 생감인데 단내가 난다.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한참은 군것질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족하겠는걸. 이 또한 복이라고 해 두자.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아들네는 손녀 딸아이의 변비 걱정에 내외도 덩달아 먹지 못한다. 딸은 감 냄새도 싫다며 감을 먹지 않는다. 요상도 하지. 감을 싫어하다니. 그런데 나는 아무리 감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 몫은 더 많다는 말씀이야.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시아버님 생각도 난다. 해마다 이만 때면 추수한 곡식이며 김장이며 감을 바리바리 트럭에 실어 보내신 시부모님. 내 이웃들이 동네가 떠들썩하게 트럭을 에워싸고 부러워하던 그때가, 다시는 오지 못 할 그때가 그립다.
그때는 왜 그게 복인 줄 몰랐을까.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게 하고 사는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마땅히 그렇게 받아먹고 사는 줄로 알았다. 당연한 하사(下賜)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칭 바보다.
아니, 누군가도 그러겠지.
어머님이 아버님이 잠깐만 살아오셨으면 좋겠다. 우리 집 마당에 추수한 트럭이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 동네 사람들이 트럭을 에워싸고 구경을 하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좋다. 하루만이라도 오셨으면 참 좋겠다. 못 다한 보은이 너무 많은데. 갚을 감사가 차고 넘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