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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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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했어야 했다


BY 만석 2018-11-11


진즉에 했어야 했다
 
왕초보교실이라고 해서 일본어 강의실을 노크했다. 그야말로 왕초보가 신입으로 서너 명이 있었다. 그러나 진도는 이미 교재 한 권을 1년 새에 끝낸 뒤였다. 따로 신입을 위해서 반을 개설하지는 않을 것이라 하니, 강의시간에 특별히 신경을 써 주겠다는 언질을 받고 입문했다.
 
물론 딸아이의 도움을 믿고 시작을 했지만, 따라갈 수 있을지 처음부터 겁이 났다. 재학생들은 대개가 주부가 많았고, 중년이 넘은 남학생들도 있었다. 그들도 아직은 저급학년 수준이라서 내가 도움을 받을 만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들은 1년이나 선배고 젊은 나이가 아닌가.
 
딸아이가 석 달을 도와주면 그들만큼은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부추기는 바람에 끌려가듯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일본어라는 것이 글의 종류만 두 가지이고 한문까지 섞여 있었다. 나같은 왕초보가, 더군다나 이 나이로써는 결코 수월치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 가지 글자를 두 가지로 발음을 하기도 하고, 모자라는 글자에 채워주기도 해서 여간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는 말씀이야. 한문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자와는 또 다른 발음을 내서 헷갈리기가 십상이다. 일본어를 배우면서 우리의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새삼 절감했다.
 
게다가 쥐뿔만큼 알고 있는 영어의 표기가 그나마 한국식 발음과 달라서, 그 또한 아리송송할 때가 많았다. 차라리 영어를 아예 몰랐더라면 더 쉬웠을 것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가 생겼다. 오히려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한문은, 뜻글자이어서 일본어의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우리 딸아이였다. 시원찮은 내 시력을 걱정하면서 사위의 도움을 얻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을 일일이 스켄을 떠서 12포인트로 컴에 입력을 해 왔다. 또 강의가 있는 날은 두 시간을 할애해서 개인지도를 자처했다. 고마운 일이나 그 량이 어마무지해서 내겐 벅차다.
 
강의가 있는 날은 보온물주머니에 끓인 물을 부어 공수를 해오고, 따끈한 차를 보온병에 대령하기도 한다. 점심은 의례히 제 집에서 차려 먹이고, 뜨거운 물을 받아서 샤워를 하게하고. 꼭 기숙사의 사감 같이 돌변했고, 나는 그녀의 막내 딸아이처럼 되어버렸다 ㅎㅎㅎ.
 
잘 아는 사람은 그까짓 것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겐, 일본어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딸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이 어미를 길러내고 싶은 모양이다. 이젠 빼지도 박지도 못하고 끌려가게 생겼다. 허허. 스스로 재미가 붙어야지 끌려가는 공부는 성과가 적은데 말이지.
 
교재의 cd를 구입해서 듣기 연습을 시키고, 숙제도 한 주일에 3페이지씩을 내 준다. ~.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영감의 행동이구먼. 말은 없지만, ‘당신은 할 수 있을 것이야.’하는 식으로, 내가 공부를 하는가 싶으면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는 거 아니겠어?
 
머지않은 훗날에 일본에 사는 손주 녀석이 방문을 하면, 통역을 하라고 재촉을 할 태세다. 가만 있자. 딸아이와 영감이 작당을 한 거 아냐? 어미가 스물 셋이여? 마흔 셋이야. 칠십도 한참 넘은 이 나이에. 에구~. 친구들 말대로라면 복이 차고 넘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지만.
 
친구들은 손주 보느라고 진땀을 흘린다 한다. 어쩔 수 없어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남들 못한 공부를 원껏 하고서도 아직이니 그 아니 복인가란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내 나이 육십만 됐어도 좋겠다. 왜 진즉에 배워놓지 못했는지. 후회가 막급이다.
 
그러나 지금이 미래의 가장 빠른 날이란다. 오늘 시작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또 더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떠듬떠듬 어설프게 읽어 내려가는 일본어도, 이게 어디냐며 내 스스로를 자위한다. 그래도 입문 첫날보다 오늘이, 또 내일이 나을 테니 말씀이야.
 
먼 훗날 내 손주들이 내가 없어진 세상에서, ‘늘 공부하던 할머니로 기억하기를 바래며 이 글을 썼다.
늦었다고 포기하는 이들이 다시 용기 내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썼다.
저런 노인도 하는데...하고 자위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며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