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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만석 조회 : 325

분위기 좋고 좋고


분위기 좋고 좋고
 
아주 오래된 비디오테이프가 줄지어 세워져있으나 그림의 떡이다. 테이프를 돌려줄 박스는 예전에 고장이 나서 문을 닫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기기 손봐주는 곳도 없을 터, 아니 찾으면이야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지. 그러나 <금강산 탐방기><시어머니의 고희(古稀)>연은 가끔 한 번씩 돌려보고 싶은 때가 있기는 하다.
 
어떻게 사위가 열어보게 되었는지 고장난 테이프박스를 손질하더니 테이프를 ‘USB’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차라리 테이프박스를 중고로 하나 사는 게 낫겠다고 한다. 며칠 뒤에 사위는 상태가 괜찮은 테이프박스를 구입해 왔다. 심심할 때 보고 들으시란다. 고마운 일이지. 아무튼 사위 손에 들어가면 해결되지 않는 게 없다니까 히히히.
 
다음날. 오잉~. 어디서 이런 노래가. 컴 앞에 앉았던 나는 튕겨져 나오 듯 일어나 안방으로 내달린다. 영감이 열적은 듯이 히죽이 웃어 보인다. 그 특유의 소리 없는 미소. 아니, 미소라기에는 나도 좀 열적다만, 하여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웃음이다. 그럴라치면 어제 같은 날엔 사위의 등을 좀 두드려주며, 고맙다는 뜻을 표해 보였으면 오죽 좋아. 왜 그걸 못해. ㅉㅉ.
 
아무튼 안방 문을 열자 분위기 좋은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영감이 CD 케이스를 들고는 흥얼거리고 있다. 50년 결혼생활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영감의 입에서 가요가?
~. 이런 게 다 있었어요?”
사무실 문 닫을 때 몇 장 갖고 왔었지. CD가 잘 돌아가나 보느라고 한 번 걸어봤어.”
 
~. 노래 좋은데.”
좋으니까 가져왔지.” 영감도 기분이 썩 좋은 모양이다. 모처럼 방안 가득히 화기가 돈다.
근데 어디다 뒀었수? 난 보지도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알량한마누라였음을 새삼 실감한다.
 
남편에게 이런 CD가 있었는지, 영감이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도통 모르고 있었으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영감이 7080의 애창가요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 더군다나 남편이 그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는 멋(?)도 부릴 줄 아는 남자라는 것을, 이제야 확인을 했으니 나는 정말로 못 말릴 한심한 마누라로구먼.
 
영감이 좋아서 챙겼다는 노래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꼭 영감 성격을 닮은 노래다. <노고지리의 찻집>, <유심초의 사랑이여>,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 <채은옥의 빗물>, <영사운드의 등불>,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 <조성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가 담겨져 있다. 조용히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아니, 이 두 늙은이 상태로 보아서는 호사스러운 멜로디다.
 
그런데 갑자기 템포가 빨라진다. 주방에서 저녁을 짓던 중에 다시 안방을 기웃거린다. 어랍쇼~. 하하하, 화면 가득히 <지르박>에 맞추어 남녀 한 쌍이 스텝을 밟고 있다.
그런 것도 있었어? 언제 그런 걸 다 배웠누?”
배우긴 뭘. 김씨가 배워서 같이 놀러 다니자고 줬던 거지.”
 
그래서? 자기는 안 배웠다구? ~. 믿는다. 믿고말고. 그이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춤에 관한한 무뇌한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차라리 그때 영감이 사교땐스를 배웠더라면 나도 좀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았으려나? 다시 조용한 노래가 흐른다. 식탁에 앉아서 <나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들으면서 저녁식사를 한다. ~, 오랜만에 분위기 좋고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