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만 삽시다요
내 영감은 참 희안한 사람이다. 여느 때도 말이 없기는 하지만, 내가 컴 앞에 앉기만 하면 말을 끊는다. 무슨 큰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쉬운 말로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렇다고 못마땅해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말씀이야.
해가 많이 짧아졌다. 빨래도 이른 시각에 걷어 들여야 하는데 나는 컴에 매달리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기 일쑤다. 그럴라 치면 영감은 어느 결에 빨래를 걷어 식탁 위에다 차근차근 개어 놓는다. 허긴. 세탁기도 영감이 돌렸으니 마무리도 당연히 해야지 ㅋㅋㅋ.
“밥 할까요 죽 쑬까요.”
속이 좋지 않다는 영감에게 주방으로 향하며 재차 묻는다.
“내가 해.” 아니, 밥을 당신이 한다고라? 그럴 리가. 내가 있는데.
“왜? 화 났수?”
“화는 무슨. 할 일 없는 내가 한다고.” 나는 하는 일이 있으니까 할 일 없는 당신이 한다고?
괴이한 일이다. 무덤에서 시엄니가 들으시면 벌떡 일어나시겠다. 나는 편해서 좋은데 말이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재차 묻는다.
“밥 먹어도 되겠느냐고요.”
“죽 앉혀놨어.”주방 쪽에서 나는 소리다.
하하하. 오늘 만석이 땡잡았네. 근디, 너무 그러면 미안한데….
가만있자. 정말 옛날처럼 나, 돈 버느라고 작업하는 줄 아는 거 아냐?
‘영감~! 나, 이제 돈 다 벌었어여~. 이젠 그럴 주재가 되지도 않는다고여~.’
“무슨 쓸 데 없는 소리를!”아마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고함을 치겠지.
죽어도 그 알량한 자존심을 못 꺾는단 말이겠지.
‘알아요. 알아. 당신 맘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수? 우리 그냥 그럭저럭 이대로만 사십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