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있어야지
옥상의 가건물이 불법이라고 구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일단 지적을 받았으니 도리가 있는가. 철거를 하려고 사람을 사자하니 쉽지가 않다. 실내 계단으로 건물 폐기물을 날라야하는데, 여기 저기 알아보니 쉽게 덤비는 이가 없더라는 말씀이야.
오기가 발동한 영감이 자작(自作)작업을 하겠다고 소매를 걷어 붙였겠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이건 사사건건 마누라를 불러대니 내가 못할 짓이로구먼.
“저것을 가져와라.” “여기를 잡아라.”는 등, 도통 나를 내버려두지 못한다.
오늘도 영감에게 붙잡혀 옥상에서 나온 폐기물을 수거하고, 그것들을 부대에 채워서 끌어내리고 나니 시방은 죽을 지경이다. 결국 하루 종일을 그렇게 씨름을 하고나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있다. 사실은 눈을 들어 시간을 가늠할 여유도 없긴 했지.
저녁을 지어야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밥을 하기가 싫다. 아니, 일은 같이 했는데 누구는 밥을 지어 대령을 해야 하고, 누구는 앉아서 지어주는 밥을 먹어야 해? 물론 기운의 차이가 있어서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한 것은 인정을 한다. 그러나 힘들고 귀찮은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런 날은 훌훌 털고 일어나 밥 한 그릇 사먹자 하면 어디가 덧나나? 맥 빠지고 기운 떨어진 늙은 마누라에게 밥까지 시켜야 직성이 풀리겠느냐구. 생전에 집밥 못 얻어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밥은 무조건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그 관습은 어찌 그리 버리지 못하는고.
사실, 씻고 옷을 가라 입고 찍어 바르고 식당으로 가기도 귀찮은 일이다. 씻어놓은 쌀 있으니 차라리 돌솥밥 한 그릇 앉히는 일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감의 행색이 괘씸하지 않은가. 마누라가 귀찮을 생각은 왜 조금도 하지 못하느냐는 말씀이야.
밥을 앉혀놓고는 영감이 좋아하는 명란젓을 익히려다가 홱 밀어놓는다. 오늘은 있는 반찬에 그냥 밥만 익혀 놓자.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도 기분이라는 게 있는데…. 자꾸만 무시를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황태국에 어제 졸여놓은 메추리알장졸임과 김치와 깍두기를 달랑 꺼내놓고 밥 먹기를 권한다. 영감도 오늘 일이 힘들기는 했나 보다. 아침보다 눈이 더 쾡 한 것 같다. 숟가락을 잡은 그의 손이 한결 거칠다. 마음이 짠하다. 명란젓을 익혀서 줄 걸 그랬나?!
그러게 ‘눈치가 있으면 절간에서 새우젓국물이라도 얻어먹는다’ 하지 않던가. 고루하고 고지식하고 고집이 센 영감은, 항상 그 변하지 않는 삼고(三高) 때문에 신상을 볶는다니까. 눈치 있게 좀 사시구랴. 마누라 비위도 좀 맞춰 가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