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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만석 조회 : 275

아직은 아닌데


아직은 아닌데
 
금요일에 뵀는데 얼마나 됐다구.” 왜 전화도 없느냐는 에미의 말에 내뱉는 딸아이의 답이다.
그랬나? 엄마는 오늘 큰 병원에 다녀오고, 동네 병원에 가서 독감예방 주사 맞고 했더니, 한 달쯤 지난 줄 같았지.”
 
잠깐 말을 끊었던 딸아이가 화들짝 놀라서 되묻는다.
, 오늘 엄마 대학병원 가시는 날이었구나요. 내 코가 석 자라서 깜빡했네요.”
그래 병원에선 뭐래요? 별 일 없으시데요? , 오늘은 검사만 하셨겠구나요.”
 
어제 이른 저녁을 죽으로 대신하고 아침에 금식을 했다. 검사가 끝나자 병원에서 다시 죽을 사 먹고 집으로 향했다. 목의 마취가 풀리는가 보다. 점점 통증이 커진다. 검사 뒤에 아침을 먹을 때까지는 괴로운 것도 모르고 넘겼는데 점심은 먹을 것 같지가 않다.
 
쌘스 있는 영감이라면 <죽집>을 지날 때 그 부드러운 잣죽이라도 싸 들고 들어갈 것이지. 죽집을 그냥 지나치고 터덜터덜.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집에 들어가면 내가 영감의 밥을 챙겨야 한다. 생각하니 화가 난다. 당신이 해결하라 하면 기껏해야 라면이나 물 부어 먹을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라 모르겠다.’널브러져 있으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며느리가 냄비를 끌어안고 들어선다. ‘이건 또 무슨.’
죽 쒀 왔어요. 어머니. 일어나세요.”
 
나 병원에 다녀온 걸 어떻게 알았어?”
며칠 전에 어머님이 말씀하셨는데요.”
그랬나?”
 
죽을 겨우 한 숟가락 뜨는데 딸아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죽 잡숴야 할 텐데. 내가 지금 죽집 들러서 갈게요. 뭘 사 갈까요. 잣죽이 부드러워서 좋죠?”
올케가 방금 죽을 쒀 와서 시방 먹는 중이다.”
 
올케가요? 그러게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먼데 사는 딸보다 낫구려.”
저녁에도 죽으로 자셔야죠? 제가 준비할 게요?”
결과 보러 가는 날은 꼭 제가 모실게요. 일주일 후죠? 안 잊어버리고 차 가지고 갈게요.”
 
딸은 오늘 병원 가는 일을 잊은 게 몹시도 미안한가 보다. 평소답지 않게 호들갑이다. 그렇겠지. 알고도 두 늙은이만 보냈을 리는 없지. 매사 자상하고 야무진 아이 아닌가. 예약일을 핸드폰에 잘 담아놓고도, 이사를 하고 정리를 하느라고 깜빡했나 보다.
 
그러나 마냥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벌써 이렇게 아이들에게 의지하면 안 되는데.’ ‘아직은 두 늙은이가 해결해야지. 아직은 아이들에게 기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야.’ 그런데 자꾸만 힘이 빠지니. 이러는 내가 싫다. 정말 내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