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박사 하나 또 나겠네
오랜만에 아컴에 들어왔더니 그런대로 굴러가던 글쓰기가 딱히 제 자리를 잡지 못한다. <로그아웃>을 하려고 그 자리를 찾자 하니, 생각이 나질 않아 며칠을 헤매었으니 말해 뭣하리. 딱히 물어볼 데도 없어 긴 시간을 두고 더듬거렸더니, 이제야 그 글꼴이 잡히려나 보다.
그동안 글방의 운영이 어쩌니 저쩌니 했더니 좀 나아지기는 한 것 같은데, 이젠 몇 달 닫아놓은 내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혼자 독야청청(獨也靑靑) 할 것 같던 그 허세는 어디로 갔느냐는 말씀이야. 자꾸만 자꾸만 주녹이 든다.
사람 좋은 내 사위가 이 장모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장모님이 왜 요새 글을 쓰지 않으셔?”제 댁에게 묻더란다.
“시력이 나빠지져서 글이 잘 안 보이시나? 우리 집 큰 모니터랑 바꿔드릴까?”
영감과 각방을 쓰고 있으니, 자유롭게 글을 쓰기가 어렵긴 했다. TV와 모니터가 나란히 있으니 글이 쉽게 써지겠어? 영감은 24시간 TV를 켜 놓아야 하는 양반이 아닌가. 그렇다고 다시는 상종을 않고 살 것처럼 컴을 낼름 들어다가 내 방에 놓기도 그렇고.
허나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어.’ 라고는 하지 않았다. 컴이 내 방에 있어야 한다는 건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잖은가. ‘우리 엄마도 장모님처럼 이렇게 글을 쓰시면, 나도 엄마의 근황을 잘 알 수 있을 터인데.’ 했다더니 내 근황도 궁금했던 것일까?
아무튼 며칠 전에 사위가 제 집에서 탁자를 실어 오고, 컴퓨터의 먼지를 털어내어 내 방으로 옮기는 작업을 개시했다. 컴에 관한 한 내 사위는 박사님이시걸랑. 그 성의가 가상하고 고마워서 나는 다시 자판(字板)을 두드리고 글제를 찾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은 그 동안 우울증 이 온 게 아닌가 싶어서, 내색은 못하고 혼자 고민을 해야 했다. 개다가 더 시원찮아진 내 건강까지도 걱정할 여유가 없었으니. 자연히 잠수(潛水)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으렸다?! 제 몸을 추스린 딸아이가 이젠 나를 일으켜 세운다.
문화회관에 일본어 등록을 하고 교재를 준비하고, 사위는 다시 글을 쓰라고 은근히 부추긴다. 고마운 일이다. 암. 고마운 일이지.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질 않던가.
그러니 그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물색은 없지만 내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남들보다 더디드라도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그넘의 우울증은 어디로 간 거야. 이리 저리 바쁘게 나대는 통에 그만 삼십육계로 줄행랑을 쳤나보다.
나는 지금도 한 손에는 커피 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마우스를 든 채, 더듬거리며 일본어를 읽어 내려가는 중이다. 영감이 내 등 뒤에서 말한다.
“우리 집에 박사 하나 또 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