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도 나도 변했어요
흥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이해를 해 주겠다. 그렇지도 못한 사람이 가요 프로그램을 무척 즐겨 듣는다. 가끔은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음정도 박자도 모두 제멋대로다. 그나마 즐기는 것을 면박을 주기도 뭣해서 듣기만 한다.
보륨까지 높아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도 청력이 시원찮아 그런가 싶어서 나무라지도 못한다. 나는 외우지도 못하는 채널을 용케도 찾아 사이클을 맞추는 걸 보면 것도 재주다. 덕분에 흘러간 가수들의 이름은 곶감을 꿰듯 달달달 외운다.
원래 그런 양반이었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려니와 내 글제(題)에 오를 리도 없겠지. 유흥을 즐기던 사람이라면 그도 족하다. 그러나 유흥을 즐기던 사람이 아니었으니 나를 더 놀라게 한다. 그 외에도 요사이로 영감이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른 아침밥을 지어놓고는 내 방문을 노크한다. 아직도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는데 말이지.“밥 먹어.”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무덤을 박차고 일어날 일이다. 아마 시어머님은 못된 여편네가 제 서방을 부려먹는다고 하시겠지? 그러나 누가 시킨다고 할 만한 사람인가.
아직 반도 차지 않은 세탁기도 윙윙 돌린다. 제법 무채색와 유채색을 구별하여 돌리고는 옥상에 널어놓는다. 일몰이 되면 빨래를 걷어 정리를 해서 네 것과 내 것을 가린다. 혹시 비가 내리려고 날씨가 꾸물거리면 급히 옥상에 올라서 빨래를 걷는다.
나는 아예 청소기를 작동도 할 줄을 모른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의례히 영감이 씽씽 고고. 구석구석을 제법 깔끔스럽게 쓰레질을 한다. 사무실을 접고 집에 들어앉으면서부터 영감의 색다른 면모가 들어나 신기하기까지 하다. 밥? 청소기? 어림도 없던 일이다.
그럼, 난 뭘하냐구?
사흘에 한 번씩 걸레질을 한다. 점심과 저녁도 내가 전담한다. 걸레질도 영감이 하더니, 내가 영감의 심기를 건드린 뒤로는 걸레를 쥐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하는 수밖에. 세탁이며 청소도 공연히 심통을 부릴라 싶어서, 잘 못 됐다고 면박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어느 유명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으면 아니, 늙으면 성이 다른 호르몬이 분비된다지? 그렇다면 영감에게도 여성 호르몬이 생성 된다는 것이겠다. 그럼 나에게는 남성호르몬이? 것 참 재미있는 일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요새로 나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손을 놓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안을 가꾸고 치우는 일조차 귀찮다. 심지어는 영감이 하는 일을 돕고 싶지도 않고 잘 못 됐다고 잔소리도 하기가 싫어졌다.
남편이 가사를 돕는 일은 좋은데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건 좀 문제다. 내가 봐도 전에 보다 집안이 많이 어두워졌다. 영감이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사단이 났을 듯하나, 잔소리도 않는다. 남들이 알면 흉을 볼 텐데 것도 개의치 않는 걸 보면 역시 호르몬 탓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