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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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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진 남편


BY 만석 2017-12-25

작아진 남편

 

여보. 고구마가 비에 젖어요. 어째요.”

베란다에 들여놓은 고구마 자루가 비에 젖고 있어서. 그러나 당신에게 어디로 옮겨놓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옮겨 놓으라 하면 내가 옮겨 놓을 참이었다.

 

그러나 어느 새에 남편은 고구마 자루에서 고구마를 일일이 꺼내어 고무통에 넣고 있다. 비에 젖은 베란다도 말끔하게 닦는다. 그것까지도 바래지는 않았다. 베란다의 빗물을 닦은 걸레도 말끔하지는 않지만 빠느라고 빤 표적이 보인다. 물론 다시 펴서 비누질을 해야겠지만.

 

불과 6개월 전에는 언감생시. 바라지도 못할 일이다. 대기업은 아니어도 잘 나가는 회장님이 아니셨는가. 이사를 온 뒤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일이지만 말이지. 때때로 택배가 온다든가 등기물이 배달 될 때면, 간혹 영감을 회장님으로 찾기는 한다.

 

그러나 남편도 그렇게 순응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웃집에서 눈을 치우러 나오면 남편도 삽을 들고 나선다. 미처 이웃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남편의 빗자루는 더욱 바빠진다.

아유 어르신 수고하십니다.”하는, 동네의 어르신으로 불리우는 게 본인도 편한 눈치다.

 

그렇기로서니 아내에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마냥 작아지는 영감이 곱지만은 않다. 내게는 아직 변함이 없는 하늘같은(?)서방님이 아니신가. 시어머님이 무덤에서 얼마나 일어나고 싶으실까. 나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영감이 곱기도 하지만 어머님은 그게 아닐 테니 말이지.

 

그런데 바라지도 않은 일이 왜 버러지는 것일까. 영감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냥 당당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쓸 데 없는 자존심도 좀 부리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집도 좀 부리고 말이야. 그래도 난 받아줄 것 같은데.

 

참 신기한 것은 역시 내 마음이다. 남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면 생활하기에 한참 수월하다.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좋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고분고분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콧대를 좀 세웠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지.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나에게도 무조건 고분거리는 것만이 좋지는 않다. 남편이 좀 지나치다 싶을 때는 더럭 겁이 난다. 아마 저러다가 우당탕 밥상이라도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말이지. 워낙 그리 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얏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쯤에서 좀 쉬어가는 게 좋겠다 싶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지 않던가. 좀 과하다 싶게 당겼으니 이젠 좀 슬슬 풀어야겠다. 내가 먼저 화장님으로 모시자는 말씀이야. 그러면 화장님도 좀 달라지겠지? 아직도 나에겐 영감이 회장님이라는 인식이 필요해.

 

남자는 여자 하기에 달렸다? 그래서 우선은 걸레질 하는 것을 거두었다. 한결 영감의 분위기가 밝다. 마음에 없는 일을 했던 것이 역력하다. 옳거니. 영감은 이제 내 손 안에 있음이야. ~? 아니,‘여자는 남자가 하기에 달렸다고도 하지? , 영감의 손 안에 있는 거 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