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호의 짧은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책을
며칠 전에 읽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주제별로 골라보는 재미도 있고 자투리 시간에 한 두편의 글을 읽는 그맛도
다양한 맛이다.
소설 중의 하나인 '아파트먼트 셰르파'라는 글이 떠오른다.
고시원비라도 조금 보태려고 시작한 알바생인 복학생은
너무 쉽게 '만나'치킨집에서 오토바이 면허증 없이도 알바를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행복 아파트'에 치킨을 배달하는 일은 곤욕이었다.
당 아파트에 출입하는 배달 사원들로 주민들이 승강기 이용에 불편이
있으니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라는 경고문에 처음엔 놀랐는데
두 달 동안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히말라야 산악인들을 위한 셰르파가 된 심정이고
누워있어도 계단이 허공에서 둥둥 떠오른다.
어떨땐 18층까지 낑낑거리며 올라갔더니 젊은 여자가 프라이드가 아닌
양념을 시켰다는 말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빌뻔 했던 적도 있다는데...
그러던 어느날 마지막 배달이라고 생각하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중년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치킨값을 주면서
"앞으로 저희 집 배달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 말에 고맙기도 하고 조금 울적한 마음에
왜..이런 일들이 생긴 거냐고 물었더니
"글쎄요..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
외출하고 들어오면서 공산품과 저녁먹거리 그리고 생수를 사왔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 물건을 옮기는 남편 옆에 웬 어르신이
우리 물건을 현관문 안으로 옮기신다.
남편은 주차하러 다시 되돌아서고
난 작은물건을 안고 차에서 내리면서 그광경을 보면서
'아버님이신가?
그런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셨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현관앞으로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리 아버님보다 키가 조금 터 크시고
체격이 좋으신 어르신이다.
어르신은 박스와 생수를 엘리베이터 안까지 옮겨 주셨다.
"고맙습니다~"
빨간 표시등을 보곤
"10층에 사시나봐요?" 하면서 인사를 건네니
웃으시며 끄덕거리신다.
"전 저의 아버님이신줄 알았어요."
웃으시는 그 어르신은
내가 내리려는 층에서도 물건을 옮겨 주셨다.
"고맙습니다~"
또한번의 인사를 하고 우리집 현관문을 여니
아버님이 나오셨다.
잠깐 전의 이야기를 아버님께 들려주시니
"오호! 그래~" 하시면서 웃으신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아버님의 최대의 리액션!!ㅎㅎ
대부분 어르신들은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목례정도 하시고 아니면 그냥 지나치시고
얼굴 모르는 이웃들은 서로 안보는 척 하면서
앞만 쳐다보면서 다니는데
엘리베이터 어르신은 참 따뜻한 분으로 와닿는다.
작은 도움을 받은 일로 저녁시간까지 훈훈함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