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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만석 조회 : 774

아직은 살아 있는 거야

아직은 살아 있는 거야

 

어느 날.

나는 전철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마 영감의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내 정기검진이었으면 영감의 차를 탔을 테니까. 영감은 신경이 예민한 양반이라 본인의 정확한 검진을 위해서는 운전을 하지 않고 가는 게 정석이었다.

 

한참을 가자 하니 나보다는 연상인 듯한 귀부인이 내 앞자리에 섰다. 주위를 돌아보니 누구도 자리를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못해서 자리를 양보하고 그 부인의 앞에 섰다. 야무지게 입매를 모으고 무릎을 붙여 가지런히 앉은 자태가 보기에 좋았다.

 

제법 구색을 갖추어 입은 것으로 보아, 젊어서는 멋 꾀나 부렸겠다 싶었다. 치렁치렁 귓볼에서 흘러내린 귀걸이며 오버 넷의 목걸이가, 그렇게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의상실 오너 50년에 남은 건 타인의 입성을 살펴보는 눈치만 남았질 않은가.

 

그러나 그의 속 눈썹을 내려다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뽀얀 환데이션이 속 눈썹에까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구보니 얼굴 전체에 펴 바른 환데이션이, 주름 사이사이마다 고여서 주름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대고 있었다. 그 주름을 숨기기 위해서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했는가보다.

 

내 옆에 나란히 섰던 아가씨도 내 앞의 귀부인(?)을 아까부터 살피는 듯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의미가 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아마 과하다 싶은 화장에 나와 동병상련의 애잔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도 그 귀부인은 분첩을 꺼내어, 다시 볼을 토닥거렸다.

 

그 이후 나는 화장을 접었다. 스킨과 로션과 영양크림이 내 화장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다른이들이 내 눈에 저러한데, 나는 다른 이 들에게 달리 보이겠는가. 생긴 대로 살자. 덧바른 화장이 오히려 우스운 꼴이 되기 십상인 것을.

 

그러나 이 나이에 추해 보이지는 않아야지. 왕년엔 나도 멋 좀 부리고 살았느니라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초라하지는 말고, 남들이 눈살을 찌프러트리지도 않는 정도로 뭔가 하고 싶어졌다. 그저 이렇게 주저앉았기는 내 자신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말이지.

 

나도 55년 동안 가정을 위해서 경제 활동도 했고 주부로서도 긴 세월을 살지 않았는가. 그냥 물러앉기에는 억울했다. 특히 내 두 손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느냐고. 그래. 화장 대신 손을 다듬어 주자. 젊은 날 나도 네일을 하는 여자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었는가.

 

그 뒤로 나는 열심히 <네일 숍>을 드나들었다.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추하지 않게. 그러나 빨간 색은 포기를 하지 못하겠다. 거금을 들일라치면 그것쯤은 용서를 받아야지. 특별히 내 손이 예쁘다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지. 그러나 치장을 하면 조금은 나아 보인다는 말씀이야.

 

오늘도 거금을 치르고 <네일 샵>을 다녀왔다. 화장대신 하는 손톱정리. 반달 같은 빨간 손톱. 이젠 양장점오너가 아닌 평범한 만석이의 트레이트 마크. 이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영감의 반응이 신통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그건 묵인한다는 뜻이걸랑?! 히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