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의 극치로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예전부터 듣던 얘기지만 그닥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이를 더하면 더할수록 그 말이 목전까지 차 오르고 웃음을 짓게 만든다. 하루 종일 영감과 붙어 있으니 다투는 일이 다반사.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유치하다.
차라리 젊었을 때는 서로 바쁜 핑계로 부딪치는 일이 별로 없었지 싶다.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몸마저 한가로우니 자연스럽게 다툴 이유가 생기더라는 말씀이야. 더 발전을 하니 ‘내가 잘했다’에서 ‘내가 잘 났다’까지 이유도 유치가 찬란하고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하루도 부딪치지 않는 날이 없다는 말이지. 물론 길어지지는 않는다 치지만, 단막으로 끝이 나도 여운은 길기 마련이다. 대부분 나의 완승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그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영감이 말수가 적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좀 더 따지고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 중에도 영감은 그만 입을 닫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럴 때면 다행이다 싶다기보다는,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니 이건 무슨 심보인고. 박박 우기다가 내가 완승을 해야 기분이 좋으니, 나는 참 못 되도 너무 못 된 구석이 있구먼.
그런데 우리가 다투는 이유가 가관(加冠)이라는 말씀이야. 다툼이 끝나고 돌아보면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다툼은 아주 작은 것에서 기인한다. 오히려 큰 사건으로 다투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귤 반쪽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던가, 당신 방만 걸레질을 했다는 등의 시시하고 말답지 않은 데에서 다툼은 시작된다. 물론 시비를 거는 쪽은 전적으로 나 자신이다. 내가 입을 닫았으면 다툼은 없었을 것들이나, 따지고 보면 모두 타당성은 있다는 말이지.
우리 부부는 점심을 먹고나면 의례히, 버릇같이 산행을 한다. 젊어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에만, 것도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주로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만 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둘 다 백수이니 매일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기운이 빠지고 목이 타서 현관을 들어서니, 거실의 탁자 위 과일바니에 귤이 달랑 하나가 보였다. 입맛을 다시며 급히 손을 씻고 돌아오니, 귤은 온데 간데 없고 껍질만 널브러져 있다.
영감은 벌써, ‘개 눈 감추 듯’ 밀감을 목젖으로 넘기고 있었다.
“여기 귤 당신이 먹었어?”
“응.” 대답을 하다가 사래가 들려 된기침을 해댔다.
“쌘통이다.” 이유를 모르는 영감은 눈을 멀뚱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걸 혼자 먹으니까 죄 받은 거라구.”
“….”
“콩 하나로도 나누어 먹는다는데…!”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영감이 방걸레질을 했다. 어~라. 그런데 당신이 자는 안방만 걸레질을 했? 물론 전에야 바라지도 않았고 영감도 하려고도 않았던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지 않은가. 백수인 영감에 아내는 늙고 병이 들었는데 말이지.
“이 봐요. 나는 당신 밥까지 해다 바치는데, 왜 당신은 당신 방만 걸레질을 해요? 내 방도 걸레질 좀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녜요?” 이렇게 시작한 다툼은 급기야 영감의 입에서,
“근데,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졌어? 백수가 되면 잔소리를 듣는다지만 당신 요새 너무 해.”하는 반기를 들기에 이르렀다.
“옛날이랑은 다르지요. 나도 늙고 병들었다는 거 알아야지요.”로 시작해서,
“마누라 잔소리 들을 때 좋았다는 거, 곧 알게 될 거예욧!”라고 기를 세우는데,
“….”영감은 입을 닫고 딱하다는 듯 쏘아 보기만 한다. 들어보니 거짓은 아니걸랑.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뒤로 영감이, 스스로 내 방까지 걸레질을 하게 되었다는 게다. 그런데,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커다란 키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 뒷 모습이 그리 고와 보이지만은 않더라는 말씀이야. 조그만 마누라에 잡혀서 사는 키가 큰 영감이 측은해 보이니…. 나도 참 못 말리는 ‘여편네’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