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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행복한 이유


BY 만석 2017-12-08

하루가 행복한 이유

 

밥 먹자구.”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영감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각방을 쓰기 때문에 특별한 용무(?)가 없이는 방문을 여는 일이 별로 없다. 장롱이 안방에 있으니 방문을 자주 여는 건 내 쪽이다.

 

부스스 이불 속에서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잠이 깬 지는 오래다. 영감이 일어나서 주방에 들어간 기척이 났지만, 모르는 척 이불 속에 몸을 더 깊숙히 파묻었었다. 나는 요새 며칠 동안 남편 길들이기(?)’ 에 몰입 중이다.

 

이름하여 아침밥짖기를 전수(?) 중이라는 말씀이야.

어차피 영감이나 나나 백수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누구는 누워서 해 바치는 밥을 먹고 누구는 그 해 바치는 밥을 기를 쓰고 해야만 하느냐는 말이지.

 

영악한 내 딸년들은 제 서방을 잘도 부려 먹더구만서도, 나는 그게 잘 안 되더라는 게지. 물론 맞벌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더라는데, 그 아이들은 그게 되는데 나는 맞벌이 중에도 몇 번을 시도 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더라는 말씀.

 

며칠 전. 영감과 산행을 하던 중 모랫길 경사에서, 보기도 좋게 미끄러져서 뒷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넘어지면서도 큰일 났구나 싶었으나 요행히도 별 탈이 없는 듯. 툴툴 털고 일어난 것까지는 좋았으나 어~. 오른쪽 손을 땅에 짚으면서 삐끗한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왼손을 잘 쓰지 못하던 지경이라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돌솥밥이 못 마땅하던 터라 이참에 나도 꾀 아닌 꾀를 좀 부려 봐야지. 손목이 아픈 핑계로 돌솥을 치우고 전기밥솥을 꺼낸다. 물론 남편의 못마땅한 표정은 감지가 되지만 어쩌랴.

 

매 끼니마다 ‘X씻은표정이 가관이라, 급기야 내 큰 입이 고성(高聲)을 내뱉는다.

그렇게 싫으면 당신이 직접 지어 먹구랴.”

그날부터 영감은 라면에다 밥을 말아서, 전기밥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날려 식사를 한다.

 

드디어 사다놓은 라면이 다 떨어지던 날. 그래도 나는 모르는 척 사다놓기를 거부한다. 영감 성미에, 라면을 사서 들고 다닐 위인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렸다. 끼니마다 한 두 숟가락씩 물에 말아 먹는가 싶지만 어떻게 매일 그렇게만 먹고 살겠는가.

 

서러움 중에 배고픈 서러움이 제일 크다지만 잘도 참는다 싶었으나, 두 눈은 퀭하고 볼타구니에 보조개를 만드는가 싶지만 나도 참 잘 참았지. 내 손목도 아픈 걸 잘 참는가 싶었지만 급기야 물리치료를 받기에 이르른다. 나는 웬만하면 병원 출입은 잘 안 하는데 말이지.

 

영감은 올바른 밥(?)’을 얻어먹기가 쉽지 않겠다는 걸 감지했는지, 어느 날 아침엔가. 나는 이불 속에서 밥 익는 냄새를 맡게 되었구먼. 곧 이어,

밥 먹어.”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더니 돌솥밥을 지어 놓았더라는 말씀이야.

 

무거운 거 들지 말란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으니, 솥단지를 들어다가 식탁에 얹어놓았겠다?! 옳거니. 이거다. 이젠 아침밥을 손수 짓게 해야겠다. 내가 삼시 세끼를 받아먹을 양심은 아니걸랑. 이렇게 해서 아침밥은 의례 영감이 짓는 것으로 무언의 낙찰을 보기에 이른다.

 

야행성인 나는 늦게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라, 아침 한 끼만 맡아주어도 이 못 난 만석이는 행복하다지 않는가.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행복한 착한 만석이. 꼴난 밥 한 끼니 대접을 받고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여자라면, 우리 영감 색시 하나 잘 얻었쟈?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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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다 2017-12-10
    주부는 출,퇴근도 없고 휴무토 없고
    은퇴도 없는데 그 동안 너무 잘하신듯 해요.
    그러니 돌솥밥 아니면 안드시려 하시죠.
    정성스런 식사 준비 해 드렸으니
    호사하셨어요.
    그동안 식사 준비 하신거
    정산하셔서 받으시면 심하겠죠?
    분담만큼은 쭉 하심이...
    손목 치료 잘 받으시고
    빠른 쾌차 빌어요.
  • 만석 2017-12-10
    @ 수다수다님.
    꾀병 좀 부려야겠어요 ㅎㅎㅎ.
    그런데 안 하던 일을 어슬프게 하는 게 왠지 안스러워요.
    이 악물고 참는 중입니다요 ㅋㅋㅋ.
  • 친구야 2017-12-09
    만석님^^정말잘하셔네요남편분이아침밥을하셔서 주시고 물론손은아프시지만 저는손이저려서 힘드데도 울남편은 그냥해주는밥만먹고있는데날씨도춥고 눈오면은길도미끄러우니 조심조심하세요^^
  • 만석 2017-12-10
    @ 친구야친구야님.
    반가와요.
    두고 볼 일이예요.
    우선은 손이 아프니...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 승량 2017-12-09
    만석님글귀가오늘은참,귀여우세요~~
    남편분활용잘하셨어요
    기다림에미학이라고.돌솥밥도드셔보시고,
    좋으셨겠어요
    부러워요
    요새길너무미끄러워요항상조심하세요~
  • 만석 2017-12-10
    @ 승량승량님
    ㅎㅎㅎ귀여웠어요? 부끄럽게시리.
    암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 세번다 2017-12-08
    참을성있으시고 긍정적이세요
    대부분 이경우 싸워되고 며느리부르고하는데
    어찌하든 두분이서 해결하셨으니 긍정마인드로 해피하게생각하시고
    노인들 부부싸움은 자식들 부부싸움으로 번지거든요
    어느한쪽이 힘들다고 아들집 찾아가고 딸집찾아가고해서 시끄러워지는것이죠
  • 만석 2017-12-09
    @ 세번다세번다님.
    ㅎㅎㅎ ,별 일도 다 있네요.
    싸우고 자식들 집을 찾아가다니요.
    아이들이 알라 싶어서 쉬쉬하지 않나요? 무슨 자랑이라고 싸우고 자식들을 찾아간대요?
    암튼 우리들 다툼으로 아이들 싸울 일은 만들지 않습니다 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세번다 2017-12-09
    @ 만석저의 시어머님이 그랬어요 ㅎㅎ
    맨날 이혼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저의랑 살겠다고하시더니
    시아버님이 마음은 착하고 잘해주시는데 말이 좀 함부로하거든요
    그게집안내력이에요
    저의남편도 말 진짜 함부로 많이하고 조금만 화가나면 막말 마지막말 그냥 생각없이 막 쏟아내는 형이였죠
    시동생도 그래서 동서도 맨날 이혼소리 달고 살았어요

    네이트판 읽어봐도 그런 사연들 많았어요
    싸우고 와서는 아들내미 집 잘 도와주고 살면 좋은데 감나라 배추나라 며느리랑 트러블 생기니 부부싸는것이죠
    그래도 저의 시어머님은 오심 제일거리 많이 도와주시는편이기는 해요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놔서 제가 나중 다시 찾아놓기는 하지만 ㅎㅎ
    황혼이혼, 별거로 따로이 살아서 양쪽집 생활비 내게 하는 집도 보기는 했네요

    아 그리고 저 마가렛 아닌데
    지난번은 그냥 실수하셨구나했는데
  • 만석 2017-12-09
    @ 세번다ㅎㅎㅎ 세번다님.
    정정했습니다. 실수를 했군요.
    댓글 잘 달아주시는 세번다님^^
  • 세번다 2017-12-09
    @ 만석날도춥고 길도 미끄러울시기라 낙상 조심
    어르신들 낙상이 제일 위험
    뼈도 약해지고하니 젊은사람들보다 낙상 휴휴증도 커지더군요

    자식들한테는 아프지않고 두분이서 안싸우시고 지내시는것이 자식위한 최고의 선물이되더군요
    고령화시대 부부지간 사이안좋아서 나이먹어 이혼하고 그래서 알아서 잘살면되는데 나이먹고 힘듬 그리안되니
    저아는후배도 엄마괴롭히다 젊을적이혼하고 엄마가 다키웠는데 병들고 돈도없으니 그때서야 연락와서 아버지 뒷바라지 싨어도 해야하고 엄마는 재혼 새아버지도있는데 속상하다 하데요
  • 세번다 2017-12-08
    어찌됐든 이젠 본인이 밥은해결하는 시대가되었어요
    예전이야 며느리가해주고했지만이젠
    잘하셨네요
    그리되시기까지 부던하게 같이 굶으시며 참으셨네요
    전기밥솥안하고 돌솥밥을 하시다니 다음엔 반찬도 하시겠어요
  • 아침햇살 2017-12-08
    노년의 일상이 파노라마 처럼 쫘 펼쳐 지면서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살짝 미소 짓게 되네요.
    오른손이라 생활이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빠른 쾌유 바랍니다.
  • 만석 2017-12-08
    @ 아침햇살아침햇살님.
    재밌다는 건 재미 없다는 것보다 듣기엔 좋네요 ㅎㅎㅎ.
    좀 더 젊어서 시도해 볼 걸 그랬나 봐요 ㅋㅋㅋ.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